엄마도 엄마가 그립다
옥섭 씨의 봄날은 언제였을까?
중매로 만난 희경 씨가 진천 집까지 쫓아와서 기어이 외할아버지의 결혼 허락을 받았던 날, 아니면 드디어 꿈의 웨딩드레스를 입었던 때였을까? 단칸방을 벗어나 처음 집다운 집을 손에 넣었을 때인가? 나와 동생을 낳고 기르는 과정은 진정 행복했나? 동생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때, 드디어 계모임 친구들에게 떳떳이 자식 자랑을 하게 된 그 순간이었겠지?
내가 중학생 때쯤, 옥섭 씨가 두 번째로 우는 모습을 봤다(첫 번째는 내 종아리를 때린 날이다). 유난히 달빛이 그윽하던 밤이었다. 옥섭 씨는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다 괜찮아, 엄마도 괜찮지?"
한참 나긋나긋 나직하게 통화하던 옥섭 씨는 곧 흑흑 흐느끼기 시작했다. 가냘픈 어깨가 들썩였다. 더 이상 별다른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수화기를 놓지 못했다. 조용히 외할머니와 눈물의, 침묵의 통화를 이어갔다.
옆에서 말없이 그 모습을 보던 나는 처음으로 옥섭 씨가 애처로웠다. '그녀도 엄마가 그리웠구나, 괜찮지 않았구나.' 그러나 나는 조용히 돌아누워 모른 척했다. 그 밤은 길었다.
옥섭 씨가 두 번째로 울던 날 나는 이미 그녀의 봄날이 지나갔구나 생각했다. 어쩐지 놓아 버린, 놓쳐 버린 시간과 기억이 그녀의 흐느낌에서 잔잔히 느껴졌다. 만약 지나갔다면, 나는 옥섭 씨 봄날의 일부였을까, 아니면 떠나보낸 일등공신이었을까.
세상이 봄봄봄 거리는 나날인지라 매년 그렇듯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을 모닝콜처럼 듣는 요즘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나는 늘 '엄마가 엄마에게 흘리는 눈물'의, 그 밤의 장면이 떠오른다. 옥섭 씨의 봄날은 정말 그렇게 나를 스쳐 지나갔나. 오늘 같은 상념 가득한 날 옥섭 씨에게 전화를 하면 나도 울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