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능한 너
"엄마, 엄마, 엄마! 이거는 뭐야?"
"응, 이건 말이지, 마후라라고 하는 거야. 마, 후, 라. 이렇게 엄마 목에 이렇게 두루는 거."
진한 밤색 바탕에 황토색과 갈색이 섞여있고, 실크와 나일론이 합성된 그 '마후라'는 내가 말을 시작할 때부터, 기어 다닐 때부터 항상 집에 존재했다. 장롱 등의 몇몇 가구를 제외하고 딱히 물건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는 단출한 집에서 그것 하나만큼은 강력하게 '옥섭 씨 소유'를 표상하는 물체였다. 나는 매일 같이 그것을 가지고 놀았다. 옥섭 씨는 본인 목에 두르는 것이라고 알려줬지만, 마후라는 그녀의 목에 감싸는 일보다 내 장난감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일하러 나간 옥섭 씨가 없는 방에서 옥섭 씨의 것을 손에 쥐고 나날을 보냈다.
스카프나 머플러 등 훨씬 세련되어 보이는 명칭을 알게 된 중고등학생 때에도 그것은 여전히 마후라였다. 몇 번 집을 옮기면서 자개장이 모던한 새 장롱으로 바뀌었고, 티브이도 교체되었다. 다사다난한 변화와 굴곡의 시간에도 마후라는 꼭 따라왔다. 여전히 안방 옷걸이나 소파 등에서 마후라는 굴러다녔다. 그것은 그렇게 늘 존재하므로, 나는 점점 컸으므로, 마후라의 특별함은 퇴색되었다. 옥섭 씨 소유물은 점점 많아졌고, 마후라는 '옥섭 씨의 것'이라는 지위에서 '맨날 있는 오래된 것'으로 강등되었다.
희경 씨의 병원 검진 차 옥섭 씨도 서울에 올라와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서울 동생네 집에서 상봉했다. 뜻밖에도 옥섭 씨가 그 마후라를 가지고 왔다.
"어머, 엄마 이걸 아직도 써?"
"얘는, 이게 이래 봬도 참 좋아. 길이도 딱 맞고, 일할 때 편하게 두루기도 좋고."
오래된 물건을 다시 보니 반갑기도 했지만 어쩐지 애잔했다. 마후라 문양의 중간에 금색 실이 박혀있는데 어릴 때 고급스럽다고 생각했던 그 반짝거리는 색이 지금은 촌스러워 보였다. 한쪽 끝은 실밥도 터져 있었다.
'아니, 그동안 새로 산 스카프가 없는 것도 아니고 집이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닌데, 엄마는 뭐하러 이걸 아직도 쓰고 있나', 속상했다.
다 같이 밥을 먹으며 찬찬히 희경 씨와 옥섭 씨를 살폈다. 하루하루 기력이 쇠하는 희경 씨, 부쩍 주름과 새치가 는 옥섭 씨를 보니 동생이 준비한 근사한 밥상에도 입맛이 돌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새로 좋은 것 사 줄 테니 그런 건 그만 갖다 버리시라'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않았다. 오늘에서야 잊고 있었던 '마후라는 엄마 것'이라는 웅장한 상징이 다시 가슴에 새겨졌다. 물건은 낡고, 옥섭 씨는 늙는다. 그래도 나는 변함없이 그녀와 그녀의 것이 귀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