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섭 씨의 김치는 특별하다. 매우 맛있어서 먹어 본 사람은 누구나 엄지척 한다.
내 동생의 고향 친구 중 한 명은 동생이 서울로 시집을 간 뒤에도 꾸준히 우리 집에 들러 김치를 얻어 갔다. 친구도 없는 친구 집에서 김치를 얻어먹는 정도이니, 보통 맛있는 게 아니다.
예전에 영국인 남자 친구를 사귀었는데, 어느 날 한밤 중 자다 깨보니 그가 없었다. 어디 갔나 의아해하며 부엌으로 나갔는데 상상도 못 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자 친구가 냉장고 문도 열어 둔 채 허겁지겁 옥섭 씨 김치를 퍼먹고 있는 게 아닌가.
"잠도 안 오는 데 자꾸 이 김치 생각이 나더라고. 너희 엄마 김치는 정말 최고야."
노랑머리 청년이 오밤중에 입가에 김치 국물이 뻘겋게 묻은 채로 배시시 웃는 그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입맛 전혀 다른 외국인에게도 진짜 솜씨는 고스란히 전해지는 모양이다. 신기했다. 나는 다음날 그 친구에게 "엄마 김치 최고예요"라는 한국어 문장을 스무 번쯤 연습시킨 후 옥섭 씨에게 전화를 걸어 또박또박 말하게 했다. 휴대폰 너머에서 옥섭 씨가 까르르 웃었다. 당연히 둘 사이의 다른 대화는 불가능했지만 그걸로 친구는 옥섭 씨에 맘에 딱 들었다. 이거구나! 이 전략이 기똥찬 걸 알고, 이후 사귀는 남자 친구들에게 꼭 한 번씩은 옥섭 씨에게 이 멘트를 하도록 시켰다. 백발백중이었다. 옥섭 씨에게 김치는 결국 자존심이었던 거다.
엊그제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식당에서 철판볶음밥을 시켰다. 앗, 볶음밥에 김치가 섞여 있다!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최근 불결한 중국 김치공장 소동이 불거진 탓에 어쩐지 찝찝했다.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먹긴 했지만, 절반은 남겼다. 한동안 식당 김치에는 손도 못 댈 성싶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충주집에 가면 옥섭 씨는 김치를 싸준다. 그녀가 김치 통이 꽉꽉 차도록 담을 때마다 "나 혼자 먹는 데 뭘 이렇게 많이 줘?" 불평을 했더랬다. 주말 루틴대로 오늘 아침에 옥섭 씨 김치에 너구리를 먹는데 이 김치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옥섭 씨 김치는 정말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