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망망대해를 건너는 배
뭐라도 써야 하는 우리, '고독하구만!'
뚫어지게 모니터를 쳐다봤다.
백지는 분명 모니터 안에 있는데, 그렇게 광활할 수가 없다.
커서는 분명 주기적으로 깜박이는데, 자꾸 가속이 붙는 것만 같다.
"안 팀장, 알지? 이번 건 엄청 중요해.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아침부터 사장님은 격려를 가장한 독촉을 해댔다.
아침부터 카톡 알림이 쉴 새 없이 뜨고, 사방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부름과 물음에 응답을 하고,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래도 책상 앞에 돌아오면 모니터는 여전히 백지다.
뭘 써야 하나.
어떻게 써야 하나.
망망대해 모니터를 또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타다다닥, 타다다다다닥...".
앞자리, 건너편 자리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뭔가를 참 잘도 썼다.
내 키보드의 침묵이 아주 크게 들렸다.
어쩐지 나도 뭔가 써야만 할 것 같아서 '어쩌구저쩌구아리랑쓰리랑아라리어쩌구' 낙서를 해댔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가면서 사장님 잔소리의 울림과 심장의 뜀박질은 거세졌다.
네이버에 '기획서 잘 쓰는 법', '좋은 기획서 꿀팁' 같은 걸 검색했다.
다 쓸데없어, 결국 낙서를 지웠다.
백지상태의 나는 결국 백지에 어떤 것도 채우지 못하고 컴퓨터를 껐다.
채우지 못한 페이지, 떠올리지 못한 아이디어, 만족시키지 못한 회사와 동료들...
아... 언제쯤이면 쉽게 채울 수 있을까, 이 막막함.
터덜터덜 집에 오는데, 사무치게 옥섭 씨가 보고 싶었다.
엄마, 엄마, 부르고 싶었다.
이 페이지나마 옥섭 씨 글감으로 채울 수 있어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마음 편히 뭔가를 쓸 수 있다니, 옥섭 씨는 나의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