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제사는 폐지되어야 마땅한가?

by 은연중애

추석날 아침. 차례 준비하느라 가족 모두 분주하다. 거실에서는 병풍이 펼쳐지고, 제사상이 놓인다. 이번 추석은 내 인생에 참 의미가 깊은 날이다. 큰아들 내외뿐 아니라 이제 결혼식이 며칠 남지 않은 둘째 내외까지 참여한 날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우리 부부 그리고 시어머니만 살던 조용한 집에 열세 명의 가족 친지들이 모이니 시끌벅적하다. 오랜만에 사람 사는 집 같다.

며느리는 전이니, 떡이니, 과일이니 음식을 접시에 담느라 바쁘고 어린 손녀는 그 주변을 배회하며 “생일 축하합니다~~ ”. 노래를 부른다. 이제 37개월인 손녀는 많은 음식이 차려지는 것을 보고 생일이 연상되는가 보다. 그러나 손녀는 곤혹스럽다. 어른들이 음식에 손을 못 대게 하니 말이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oo 아, 차례 끝날 때까지는 참아야 하느니라~”.


손녀의 순진무구한 모습을 보니 나의 어릴 때 추석이 생각난다. 가슴 두근거리며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었다. 명절 때가 되어야 옷을 사주던 시절이었다. 자다가도 깨서 옷을 몸에 대어 보곤 했다. 지금도 몇몇 옷들은 기억이 난다. 붉은 가로줄이 처져 있던 회색 셔츠, 초록색 골덴바지...... 추석 당일에는 방마다 아이들이 그득그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만 해도 다섯 남매, 작은집 사촌 형제들도 다섯 남매였다. 오후가 되면 고종사촌들이 또 왔었다. 그 시절은 다섯 남매가 보통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명절의 설렘은 시들해졌지만, 명절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물음표를 달지 않았다. 90년대 명절 귀향 교통체증은 요즘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 같다. 낮에 오전 근무를 하고 출발하면 새벽 두 시는 되어야 도착하던 시절이었다. 국민차 프라이드에 어린 두 아들과 남편, 시어머니 모두 함께 타고 가노라면 아이들은 차멀미로 구토를 몇 번씩이나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가고야 말았던 고향길이었다.


한 세기가 바뀌면서 2000년도부터는 서울 우리 집에서 제사를 지냈다. 시어머니와 손아래 동서와 함께 제사 준비를 했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 이야기, 고향 친척들 이야기를 옛날 전설처럼 들으며, 중간중간에 잔소리도 양념처럼 뿌려지면서 제사 준비를 하노라면 거실에서는 아주버님과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기도 하고, 술잔도 기울였다. 차례 준비를 다 끝내놓고, 모두 함께 동네 목욕탕 가서 깨끗이 씻고 오는 것이 명절의 루틴이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 제사 준비 위원(?)이 바뀌었다. 연로해지신 어머니는 더 이상 주방에 나오시지 않는다. 대신에 60대 남편과 50대 후반 시동생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상전벽해와 같은 일이다. 물론 감사하다. 그래도 일은 많다. 제사 준비 중간중간에 점심, 저녁 차려내고 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다.


제사 준비 하는 사람만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 명절에 모이는 친척들의 연령도 크게 높아졌다. 내가 어렸을 때는 명절에 모이는 사람이 어른 4명(나의 부모, 숙부, 숙모)에 아이 10명이었는데, 지금은 손녀 기준으로 보면 아기 한 명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6명이다 - 증조할머니(시어머니), 할머니(나), 작은 할머니(동서), 큰할아버지(아주버님), 할아버지(남편), 작은할아버지(시동생)이다. 아들딸 구분하지 않고 한 명이 겨우 태어나고, 어른은 장수하는 오늘의 상황 때문일 것이다. 형편이 이러한데, 남자 후손이 주체가 되어 조상 몇 대손까지 지내는 현행의 제사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제사 지내는 집보다 안 지내는 집이 더 많다는 뉴스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니 비록 35년째 제사 준비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몇 년을 더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며느리에게 제사 준비를 배우라고 하거나, 함께하자고 강요(?)할만한 대의명분이 없다. 어쩌면 내가 제사 준비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마음은 든다. 어린 시절 명절 제사 풍습은 아이에게는 평생 가는 값진 추억이 될 수 있다. 자주 만나지 않는 친척들을 알게 되는 기회이기도 하고, 또한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는 장이기도 하다. 우리 후손들은 뿌리를 잃어버리고 흔들리는 세대가 될 수도 있겠다.


아쉽기도 하다. 모든 아버지 어머니들은 평생을 바쳐서 자식 농사를 짓는다. 그 위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또 그 위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제사가 없어지면 그분들이 쉽게 잊힐 수도 있다는 현실이. 그리고 그 잊히는 대상에 나 또한 포함될 것이라는 사실이 그러하다.


나라를 구한 위대한 분들만 추모의 대상이 아니다. 평생을 바쳐 자식을 키워낸 부모, 조부모, 또 그 위의 조부모들도 적어도 몇 년간은 기억되고, 감사받고, 추모받을 가치 혹은 권리(?)가 있을 것이다. 나라에만 역사가 있겠는가. 한 가정에도 역사라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물론 현재의 제사 방식이 무조건 좋다는 것만은 아니다. 과도한 음식 준비에서부터 뜻도 모르는 한자 병풍에, 역시 알 수 없는 한자가 가득한 종이를 태우는 관습까지 모든 것이 마음은 없고 그저 형식적으로, 관습적으로, 기계적으로 행해진다. 과학 기술이 발전할 대로 발전한 이 시대 상황과도 어울리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나도 세상과 이별할 날이 온다. 그날은 내 계획에 맞춰 오는 것도 아니고, 나이 순서대로 오는 것도 아니다(바라기로는 나이 순서대로 떠났으면 한다). 내가 세상과 이별하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고, 추모되고 싶은가?


어느 시인의 말처럼 소풍 오듯이 이 세상에 왔고, 또 하늘로 떠나겠지만 아이들은 남기고 간다. 그 아이들이 일 년 365일 중에 단 2-3일은 부모를 기억하여 함께 모이고, 음식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꼭 지금 같은 전통 방식은 결코 고집하지 않는다. 꼭 아들만 제사 지내라는 법도 없다. 그 방식은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이다.


부모가 좋아했던 노래 두 세곡은 감상하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유튜브 쇼츠를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세상에 부모와 함께 한 동영상도 한번 보고, 부모와의 추억도 한번 들춰보는 작은 수고는 기꺼이 했으면 좋겠다. 이것도 욕심일까? 이 욕심조차도 버리고 가볍게 떠나고, 잊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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