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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ka Dec 14. 2018

관계 속에 내가 있었다.

허나, 보다 중요한 건 나

관계는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었다.


학생이었을 때, 친했던 자들.

직장인이 되었을 때, 친했던 자들.

친목회나, 동호회로 친해진 자들.

가정을 꾸리면서 친해진 자들.

그리고 그 때에 친했던 자들, 지금은 멀어진 자들.


관계라는 건 사람의 신뢰만큼이나 깨지기 쉬운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맺기는 쉬운, 허울 따위.


누군가는 말했다. 관계가 먼저 있고, 사람이 있었다고. 우리는 관계의 나날에 묶여 있다.


동일한 사람과도 여러 관계를 맺기도 하고, 동일한 사람일지라도 관계의 모습이 변하기도 하고. 혹은 삶의 여정에 나타나는 무수한 사람들과 이런저런 관계가 생성되기도 하고.


사람은 정말로, 살면 살수록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계의 변화는 피할 수 없다. 상황이 바뀌고, 집단이 바뀌고, 역할이 바뀌니까.

그러다보면 어쩌다가 변하는 사람이 있다. 마주치는

관계가 변하다보니, 그 관계 속에서의 삶을 위해 변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조차 알아가다 보면 가끔씩 숨길 수 없는 천성이 드러나곤 했다. 잘 갈무리 된 상태로. 보통은 치밀하게 잘 숨겼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살면서 공감하는

어구였다. 그래서 여태 사람보다는 상황을 변화시키고, 그 사람 말고 내가 바뀌기로 했다. 앞서 말했듯이 관계는 끊어지기 쉬운 것 따위라, 관계보단 나를 위해 집중하는 것이 좋았고, 또한 옳은 것이었다.


사람때문에, 관계때문에 아팠고 좋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할 사람과 관계로 인해 받은 고통은 지독한 상처였다. 시간이 지나도 남은 흉터들을 보며, 나는 차라리 개차반이 되기로 선택했다. 사람과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 그것들 따위의 눈치를 보지 않는 고독한 길을 걷기로. 나는 선택했다.


쓸쓸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인간은 누구나 한 움쿰의 쓸쓸함을 가지고 살아가니까. 내겐 그들보다 좀 더 큰 쓸쓸함일지라도, 나의 외적인 것에 연연하기엔 내 눈앞의 현재가 더 소중하기에. 더 만끽하기에도 바쁜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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