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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ka Mar 03. 2023

사랑의 중력(2)

흘러가길 바라는 마음.

2)

 


 그의 형체는 눈에 잡히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존재감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 또는 누군가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느끼는 소속감 따위가 구석에서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둘러싸고 멈춰 있던 시간이 그의 온기를 타고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시간은 더디지만 아주 확실하게, 불확실한 것 투성인 공간에서 일상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새롭게 도달한 일상엔, 같은 형상을 지녔지만 다르게 보이는 사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다르게 인식되는 것인가, 또는 다른 감정들로 대체된 것인가에 대한 혼란스러움.

 그러자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너와 그녀의 휘어짐이야. 네가 만든 굴곡이고 우주가 만든 왜곡이지. 변수야, 너와 우주가 만든 관계의 장에서는 사물은 뒤틀리게 보이고, 어떤 관계는 반대로 보이기도 해. 사랑을 시작하면, 모든 것들은 사랑을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니까. 너의 생각과 감정, 시간은 사랑에 의해 굴곡되고 사랑을 통해서 인식될 수밖에 없어.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우린, 사랑을 하는 도중에는 사랑의 주위만 맴돌게 되고 사랑에 직접 접촉할 수 없어. 사랑을 태양이라고 한 번 생각해 봐. 태양과 사랑은 강렬한 에너지를 가지고, 황홀한 빛을 내뿜지만 우리는 감히 다가갈 수도 없고 감히 쳐다볼 수 없지. 그러다간 불타버리거나 혹은 눈이 멀어버려서 고통받게 될 거야. 우리는 운 좋게도 태양의 영향권 적정범위 안에 존재하고, 또 사랑의 주변부에 속하며 살아갈 수 있어. 우리의 삶이 존재할 수 있는 건, 사랑이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불운하게도 살아 있기 때문에, 사랑에 가까이 갈 수 없고 사랑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 의식이 존재하는 한, 사랑을 모른다는 두려움은 우리가 소멸될 때까지 지니고 살아야 해. 살아 있는 동안엔, 다시 말해 사랑을 하는 동안엔 우리는 태양을 만질 수도, 사랑을 온전히 볼 수도 없는 고통을 끝없이 받아야 한다는 소리야. 그런데 넌 겨우 한 사랑의 마지막을 경험했을 뿐인데, 삶이 끝난 것과 같은 위치에 서서 사랑을 볼 수 있으니 오히려 잘됐지 않니? 블랙홀에 비견되는 사랑의 중력장 중심으로 다가가서, 진짜 사랑을 만져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기를 바라겠지만 그 역시 너무 사랑임을 절실히 알게 될 거야."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환하게 빛이 났던 그 미소의 번짐. 그녀의 눈물이 보인다. 우주는 웃는 게 더 이뻤는데.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고 몸을 가볍게 떨더니 숨을 참아가며 울음을 삼키려고 한다. 하지만 몸이 들썩거리고, 주체할 수 없이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에 눈물의 색이 덧칠된다. 그녀가 아픔과 고통이 연달아 스쳐 지나간다. 그녀가 위로받고, 감정을 게워내어 무덤덤해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런 우주의 모습을 보고, 그녀의 힘든 순간을 상상하고 괴로워하는 내가 보인다. 그녀의 상처와 나의 상처가 어우러지더니 공기 중에 흩어져 대기의 일부가 되는 과정이 보인다. 상처받기 두려워 사람과의 깊은 관계를 회피하던 나에게 용기를 갖게 해 준 과거의 시간이 보인다. 맞아, 너라면 다 괜찮았지. 상처받을 용기를 내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상처를 받았던 순간의 반복이기도 했지만 맞아, 너라면 다 괜찮았어. 호르몬이 관여해서 생긴 감정이든, 우리가 지닌 미생물들의 끌림이거나 혹은 운명의 실로 연결된 것 같은 기분이든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냈으니까 그걸로 만족하고 그걸로 좋았었다. 우리는 시작부터 잘못된 게 아닐까와 같은 질문을 가슴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사랑이라는 명목하에 나보다 너를 위해 살 수 있었던 시간. 그렇게 살았던 나를 되돌아보고, 내가 맺어온 관계들을 되돌아보며 그의 말을 되새겨본다. 사랑이 중력이라면, 사랑의 공식과 물리학적인 개념으로 설명되는 사랑학이 관계의 법칙을 설명해 줄 수 있을지 않을까. 우주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새롭게 보여지기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랑이 보여질 때가 오기를 빛에 기대어 굴곡해본다.


 나 자신보다 남을 위할 수 있었던 위대하고 소중한 시간 속에서, 좋았던 추억과 행복보다 불안과 고통의 순간을 마주한다. 타인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나조차 속여가면서 뱉어 갔던 그 숱한 자위로운 단어들. 오답에 가깝고 잘못은 아니지만 잘못된 것들의 나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는 것을 욕망하기에, 상처 주지 않기를 부단히 노력했던 건 나에게 당연한 것이었지만 너는 그렇지 않았음을, 사랑했던 사람을 욕보이기 싫어 고맙고 좋았던 면만 보고자 했던 단면이 날이 선 상태로 돌아와 나를 후벼 파고 있었음을, 너는 꽤 무례했었지만 나는 오히려 내가 품어주지 못했다며 자책했던 자학적인 모습이었음을. 부정의 끝엔 미움이 남아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다가 잊혀진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니 떠오르는 것들이 무엇인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너무 미운 사람아, 현실 안에 서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사랑한단 말을 못 하기 때문에 헤어진 거니까. 부디 사랑의 끝에 서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내가 될 수 있는 것이기를.




 사랑의 주변부에서 받을 고통과 힘겨움, 그 반대편에서 받을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사랑의 중심을 향해 빨려가고, 주변부엔 애증과 희로애락과 같이 반대편에 서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감정들이 한 데 뒤엉켜 하나의 선을 길게 그리며 흐르고 있다. 사랑했던 순간과 훗날의 사랑을 속삭였던 미래의 시간들도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두 개의 선은 서로를 포개며 사랑의 중심부로 나아간다. 감정이 지닌 공간성과 시간성의 소멸, 혹은 관점에 따라 일체라고 볼 수 있는 사건이 선들의 위에서 중첩되며 일어난다. 우리는 꽤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사건의 잔상들을 볼 수 있겠지만 사랑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에 의해 굴곡된 잔상들만 본다.

 그는 "우리가 사랑의 지평선을 볼 수 있을 순간은 아마 삶과 같은 사랑의 끝에 서게 될 때이니,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그 끝에서 마주하게 될 죽음의 순간, 그 소중한 순간을 갈망하며 살아"라고 말했다.



 사랑을 관통하는 한줄기 고통이 궤적을 찾은 듯 나를 향해 곧장 돌진해 왔다. 이 아픔은 왜 심장이 뛰고 있는 부근에서만 날뛰어, 먹먹하고 답답한 괴로움을 안겨주는 걸까. 사랑의 감정은 가슴이 시키는 것이고, 심장이 만들어낸다는 연상의 당위성이 인간 유전자에 각인되어 여태껏 모두가 공감하며 공유되어 온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든다. 문득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내가 제대로 울어본 적이 없었단 사실을 곧 깨달았다. 울지 않기 위해 살아왔던 나날들이었으니 지금 울어버린다면 그간의 나를 규정해 주던 속성들이 무너지고 부정당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여전히 나를 옥죄고 있었다. 그래도 울어 보고 싶어. 나는 혼자서 우는 법을 몰랐기에 울기 위해선 도구가 필요했다. 애절한 사랑의 노래나 혹은 이별의 슬픈 장면들 따위의 소재들. 힘들어하거나 슬퍼하는 존재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받던 지난날과는 다르게 이번엔 금세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윽고 눈에서, 코에서도 슬픔이 흐르고 목에서도 눈물샘이 있는지 자꾸 목이 메였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가슴으로 소리 내어 울음을 뱉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눈물을, 너를 흘려보냈다.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랑을 우러러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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