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재영 Nov 14. 2019

bxd:시장에서
최전방은 디자인이다

아주 오래전, 아버지가 읽고 있던 신문에서 미래를 예측한 만화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만화에선 21세기에는 일반인들이 알약으로 식사를 하고 미니멀한 집에서 민무늬 일회용 옷을 입을 것이라고 예측했죠. 하지만 지금 어떻습니까? 오히려 더 화려한 음식이 많아졌고 집은 더 아름다워졌습니다.  패션은 유행에 더 민감해졌고요. 경제적인 수준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더 아름다운 디자인을 찾고 있습니다. 디자인의 가치가 더 높아졌고 기업들이 디자인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지요. 시장의 최전방이란 소리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디자인이 중요할까요? 


이번 글에서는 보편적(Universal)으로 정의되는 ‘형태’로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살펴보겠습니다. 디자인 중에서도 외관 형태 즉, 아름다운 디자인에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집중해 풀어보겠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전, 출처:TMONET, Bunker de Lumieres)


작년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였습니다. 

제주도 여행은 언제나 좋습니다. 작년 제주도 여행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걸 뽑으라면 저는 ‘제주 빛의 벙커: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전’을 꼽을 겁니다. 빛의 벙커는 과거 국가 통신시설 벙커였다고 하는데요, 이를 새롭게 전시관으로 리뉴얼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여느 비슷한 미술 전시겠지’라 생각하며 들어섰는데요, 막상 전시회를 보고 나니, 가지 않았다면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 같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광경이 압도적이더군요. 100여 개나 되는 고화질 프로젝터를 사람 키의 3배 정도 되는  높은 벽과 바닥에 가득 투사해, 마치 공간의 경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살아 움직이는 영상들이 정말 눈을 즐겁게 해 주었죠. 전시관 전체에 펼쳐진 명화들은 제게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해주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연신 ‘와~이쁘다~’라고 중얼대었습니다. 그러고 나선 기념품샵에서 매혹적인 기념품들을 왕창 충동구매했습니다. 기념품샵에서만 16만 원 정도 쓴 거 보니, 충동구매가 아닐 수 없네요. 


이렇게 사람은 외관에 약합니다. 

저처럼 사람들은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에 강한 쾌락을 느끼고 충동적인 선택을 하곤 합니다. 멀리 찾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단풍으로 물든 지리산을 보려고 꼬박 5시간 동안이나 차 안에 그대로 갇혀 운전을 하시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지리산까지 가는 시간이 길더라도 아름다운 지리산 풍경이 좋다고 하십니다. 제 경우는 강아지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귀여움에 반해 꼬옥 안아주고 싶습니다. 여기 ‘율무’의 졸업사진 좀 보세요. 마음이 사르르 녹지 않나요? 광고에 강아지 나오면 정말 건너뛰기가 힘듭니다.


(출처: @Im_yoolmoo)


예부터 사람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미’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표현했습니다.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패션, 문학, 건축, 철학, 수학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멋지게 장식된 이태리 성당은 그 웅장함에 관광지가 되었고, 날렵하고 모던한 자동차 디자인을 보면 구매하고 싶습니다. 비싸도 이쁘니까 좋아 보이죠. 이성보다 감성에 굴복하는 겁니다. 이는 서구 문화에 영향을 받지 않은 아프리카 원주민 부족들에게도 보이는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인간은 굿 디자인에 약한 걸까요? 


이유

그 이유는 본능에서 시작합니다. 

아주 오래전, 원시 시대부터 인류의 생존 경험들이 축적되어 왔기 때문인데요, ‘우리가 지금 아름답다고 하는 것들’이 생존에 큰 도움을 주어서 그렇습니다. 생물학, 진화론적으로 우리 몸은 원시시대의 몸과 거의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직 그때의 본능이 살아있죠. 우리 몸은 진화를 하면서 풍부한 에너지원을 찾고 인간을 죽이는 맹독을 피하는 식으로 발달해 왔습니다. 그 예로 인간은 빨간색을 보면 쉽게 흥분합니다. 그 이유는 빨간 동물의 피를 보고 흥분하게끔 만든 수렵 DNA덕분입니다. 그래서 신호등의 가장 중요한 표시인 멈춤 표시가 빨강인 것이죠. 또 바늘처럼 뾰족한 물건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게 만듭니다. 뾰족한 것이 인체에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정보가 DNA에 담겨 있기 때문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뾰족함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즉, 우리의 아름다움 구별 감각은 생존을 유리하게 만드는 구별 감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아직 원시시대입니다, 출처: trapits.org)


디자인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로는 우리 눈과 뇌에 있습니다. 

시각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입니다. 인체의 모든 감각 수용체 중 70%가 눈에 있다고 합니다. 모든 감각 중 70%는 눈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죠. 또 대뇌피질(대뇌의 표면에 위치하는 신경세포들의 집합)의 절반은 시각에 관여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시각은 가장 쉽고 강하게 반응하는 감각이죠. 



(시각이 처리되는 과정, 출처: doopedia)


 

시각이 처리되는 과정은 진화의 역사만큼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망막에 맺힌 시각 이미지는 시신경을 통해 정보로 바뀌게 됩니다. 이어서 후두엽으로 향한 정보는 중간 뇌에 도착하고, 시상침을 거쳐 두정엽에 도달하면서 처리됩니다. 이 경로는 인간보다 뇌 발달이 떨어지는 동물들에게서도 발견되는 오래된 경로입니다. 시감각은 진화 과정에 있어서 생존에 가장 중요해왔기 때문이죠. 그리고 지금도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향한 이러한 열정은 현대의 비즈니스에서도 적용됩니다. 

물건을 살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뭔가요? 경영 철학?, 생산? 유통? 소비자 입장에서 회사의 경영 철학은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생산과 유통은 더 미지의 세계죠. 구매에 결정적인 요인은 디자인입니다. 기능이나 사양, 가격도 중요하지만 인지적 구두쇠인 사람에게 가장 결정적 순간엔 디자인이 작용합니다. 좋고 아니고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同價紅裳)’,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디자인에서 일단 승부를 봐야 하는 제품들, 출처: publy)


소비자들은 물건을 구입할 때 외관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조사 결과에서는 디자인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자동차 업체는 60-90%, 전자업계는 약 75%, 외의류는 80%, 속옷은 약 95%, 문구업체는 거의 100%라고 합니다. 이렇게 회사들이 디자인을 강조하는 이유는 품질의 평준화 때문입니다. 비슷한 가격대라면 성능의 차이가 대체로 비슷하죠. 품질이 어느 정도 균일할 때, 디자인은 제품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승부수로 제시됩니다. 


이렇게 되면서 디자인은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경제 칼럼니스트 버지니아 포스트렐은 <스타일의 본질>에서 디자인이 과거 유행의 첨단을 상징했으나, 이제는 고객들이 최소한의 표준이라고 당연시 여긴다고 하였죠. 또 아트센터 디자인대의 전 학장 데이비드 브라운은 “디자인은 어디에나 있으며, 이제 모든 곳이 디자인된다”며 디자인이 생활에 일부임을 강조했습니다. 


사례

독일의 스포츠용품 업체 푸마는 1948년 회사를 세우고 1980년대까지 그저그저 자리를 잡아갔지만 비슷한 축구화로 차별화에 실패해 1993년 파산 직전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새로 영입된 자이츠 사장은 전략을 바꾸어 디자이너 질 샌더, 필립 스탁, 알렉산더 맥퀸과 콜라보를 합니다. 이때부터 푸마는 승승장구하며 지금의 거대기업이 되었습니다. 


기술에서 세계 1등을 외쳤던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2005년 밀라노 주최 디자인 전략 회의에서 “디자인을 새롭게 깨닫고 삼성을 명품으로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덕분에 삼성은 영국의 브랜드파이낸스가 발표한 '2019년 세계 500대 브랜드' 조사에서 페이스북, 화웨이, 도요타 등을 제치고 현재 세계 5위의 브랜드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IBM의 왓슨 회장도 ‘좋은 디자인이 곧 좋은 사업’이라 말했으며, 소니의 오가노리오 명예회장은 “시장에서 우리를 구별 짓는 유일한 건, 디자인입니다.”라며 디자인 경쟁력을 강조했습니다. 


1979년 영국의 수상이 된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는 영국의 경제를 위해 "Design or Decline"를 외쳤습니다. 디자인은 곧 혁신이라고 했죠. 실제로 마가렛 대처 수상은 디자인 육성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해냈고, 디자인 교육 내실화에 힘을 쏟았습니다. 1982년 수상관저에서 제품 디자인 세미나를 개최할 정도로 디자인을 국가 전략으로 중요하게 생각했죠. 영국 총리가 이야기했을 만큼 디자인이 얼마나 요긴한 화두이고, 경제적으로도 얼마나 큰 중요한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최전방, 디자인

지금까지 디자인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각의 소통 매체라는 점과 이를 이해한 기업들의 디자인 사랑을 살펴보았습니다. 디자인은 기업에 고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경쟁력이라는 점에서, 또 결정권장인 소비자에게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최전방에 해당하죠. 앞으로 사회의 수준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면 디자인의 중요성은 지금보다도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한편 디자인은 외관만 아름다워보이는 것 뿐만 아닌 더 깊은 사회적 의미와 혁신의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는 다음 글에서 이어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2019년 새롭게  인기를 끈 브랜딩은? bx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