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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Jan 07. 2024

서류 전형_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다 잘하는 거야?

어디서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도 다녀오는 건가

"지원자 나이가 나보다 많네." 

군 휴학, 일반 휴학을 한 남자 지원자의 경우는 29살, 아니 그 이상도 더러 확인할 수 있었다. 첫 심사를 진행할 때는 내가 이 사람의 역량 부분을 평가해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옴을 눌러 담으며 심사를 진행했다.


적게는 400명, 많게는 1000명 이상의 자기소개와 지원동기, 장단점, 포트폴리오를 보는 것도 죽을 맛이었다. 800명의 지원자를 봐야 한다고 했을 때, 1명당 1분씩만 잡아도 800분(약 13시간)을 보아야 한다. 하루 종일 앉아서 글을 보며 A, B, C 등급을 입력하고 있는 평가 자판기가 된 느낌이었다.


여러 명의 자소서를 보니 확실히 정돈된 문장을 쓰는 지원자들에게 호감이 갔다. 주제를 알 수 있는 소제목과 짧고 간결하지만 논리적으로 쓴 글은 읽히기도 빨리 읽혔고,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 반대로 불수능 외국어 지문 같은 자기소개서도 있었다. 문장이 너무 길어 누구인지 읽을수록 더 모르겠는 자기소개, 명언 33가지 모음집을 보고 영감을 받았는지 명언으로 점철된 지원동기 등 다양한 지원자들이 있었다.


단순히 "끈기가 강하다.", "MBTI가 ENFJ라 협동심이 많다."등의 이야기들은 그 이야기를 읽는 독자로써 설득되지 않았다. 뻔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죽을 고비를 넘기며 씩씩함을 얻었다는 지원자가 눈에 갔다. 중학교 2학년 때 100kg의 고도비만이었고, 소심한 성격으로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삶을 바꿔보자 결심하고 매일 산을 타고 2시간씩 운동해서 2년 만에 40kg를 감량했다는 것이다. 짧은 내용이지만 이 내용 외에 다른 내용을 보지 않아도 끈기 있는 사람이란 게 각인이 되었고, 한 번쯤 보고 싶었다.


대학생 시절, 한글의 자모 하나하나를 조립하고 문장을 깎는 심정으로 정성스레 빚은 자소서라고 생각하고 제출했지만, 평가자의 입장이 되어 다시 보니 잘 읽히는 지원자들이 많이 없었다.

[대외활동 자기소개서 작성 Tip]
- 나의 자소서는 빠른 시간 내에 읽혀야 한다. 읽기 편하게 핵심 내용을 강조해서 간결하게 작성하자.
- "안녕하십니까, 00 학과 000입니다." 등 이미 지원서에 쓴 내용을 중언부언하지 말자.
- 주장만 하지 말고 나의 경험을 통해 그 주장을 설득시키자.
- 구체적인 숫자를 활용하면 글의 설득력이 올라간다.


대외활동의 경우 영상이나 콘텐츠를 제작하는 미션들이 많이 주어져서 포트폴리오도 암묵적으로 필수라고들 많이 얘기한다. 포트폴리오는 말 그대로 내가 자기소개서에 쓴 내용을 뒷받침하는 문서이다. 그렇기에 깔끔하게 잘 만든 포트폴리오는 지원자의 역량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 지원자는 포트폴리오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구글 드라이브 링크를 냈는데 그 링크는 소유자가 허가를 해야 볼 수 있단다. 그 지원자는 서류합격을 허가받지 못했다.


계속 포트폴리오를 보던 참이었다. "15개 대회 수상, 대외활동 10개 수료, 유튜브 채널 운영" 회사에서 모셔가야 하는 인재도 볼 수 있었다. 고작 나이가 22살이었다. 내가 22살 때는 순하리 소주에 알곤이 얼큰탕을 먹은 것 밖에 기억이 안 나는데,,


"꾼이네 꾼" 

"대외활동에도 꾼이 있어요?" 

"뽑으면 대상 타거나, 아니면 바빠서 맨날 안 나오거나"


경력이 화려한 지원자들은 다른 대외활동과 병행하면서 흔히 말하는 세탕을 뛴다거나, 학교 생활도 바빠 뽑기가 꺼려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심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 결국에 면접까지 올려서 간절함을 확인하기로 했다.


글씨를 빼곡히 적어 자기소개서를 PPT로 옮긴 지원자, 디자이너 수준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지원자 등 다양한 자료들을 볼 수 있었다. 각자의 활동, 수상 이력, 대외활동, 공모전 등 포트폴리오 자료는 대학생들의 열정응집체였다. 그 열정에 타고 있던 시간.. 

. . . . . . . .

갑자기 사무실이 고요했음을 인지했다.

사무실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11시 53분이었다.



위 글은 과거에 대외활동을 운영하며 실제 겪었던 일을 토대로 변형, 각색된 내용으로 실제 인물 및 사건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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