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로버츠, 결심이 필요한 순간 리뷰
#결심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준다.
선택의 기로 앞에서 우리는 고민한다. 그 고민은 마치 주차장 자리와 같다. 밤 9시,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가기 전에 떠올린다. 남은 주차 자리가 있을까? A구역으로 갈까, B구역으로 갈까, 아니라면 아예 들어가지 말고 도로에다가 대고 아침 단속 전에 일찍 나갈까.
여기서 동생과 나는 극명하게 갈린다. 동생은 감각에 기대어 선택한다. '오늘은 자리가 있을 거 같은데?!' 하고 주차장을 한 바퀴 돈다. 신기하게도 꼭 1자리는 비어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 역시 괜히 '오늘은 느낌 좋은데?!'하고 주차장을 돌면 빈자리는커녕 차장에서 좁디좁은 이동로를 요리조리 피해서 외부로 나와야 한다.
그런 이후 나는 아예 밤에는 주차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봤더니'의 선택은 나를 경험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반대로 내 동생은 감각적인 사람이겠지.
원했던 결과를 얻기 위해 좋은 선택을 하고 싶겠지만, 결과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 결국 남는 건 결심을 한 나 자신뿐이다. 결심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준다.
#합리적인 사람은 자기 편한 대로 산다
그런데 이런 선택의 과정을 스스로 깨닫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많은 이들이 자기를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어서 그렇다. 책의 문구를 그대로 인용하면 '본인이 하고 싶은 건 뭐든지 이유를 찾거나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놓고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자위한다.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평생 그렇게 살고 잘 살더라. 암튼.
조금 더 철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나를 내가 인정한다는 건 죽음과도 같다. 인지한 순간으로부터 삶을 잘라내어 이전의 나를 죽이고 새로운 내가 탄생하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도플갱어를 마주하면 죽는다는 말은 스릴러라기보다는 철학에 가깝다.
#희극인가요? 비극인가요?
우리는 나를 바라보는 제삼자를 찾기도 한다. 그 사람은 나에게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 같으니까. 한발 더 나아가면 좋은 선택이라기보다는 좋은 결과를 얻고 싶은 것이고, 결국 미래를 알고 싶다는 욕심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내 인생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책에서는 다윈의 일화를 소개하지만, 내게 더 가까운 건 영화 <스트레인저 댄 픽션>이다.(엠마 톰슨 짱!) 국세청 직원인 주인공 해럴드에게 갑자기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음성이 들리기 시작하는데,,, 영화는 그 음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저 질문은 주인공이 그 음성이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이야기는 끝이 있다'라는 말에 희극적 요소, 비극적 요소를 하나씩 찾아보면서 나온다. 예를 들어, '로맨스가 있다'면 희극, '불행이 겹친다' 이러면 비극으로 분류하는 방식이다.
이런 분류가 결심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누군가 어떤 결심을 하려는 건 대부분 비극인 이야기를 희극으로 바꾸고 싶어서일 테니 자기 자신이 인생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작가라면 점에서 꼭 필요하다.
#결혼, 결심의 집합체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은 결과적론적인 대답이다. 한국적인 제목이라 딱이긴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영문 제목이 딱 맞다. 'Wild Problems: A Guide to the Decisions That Define Us'
느낌 탓인지, 번역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이전에 읽었던 저자의 책인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에 비해 글이 젊어진 것 같다. 문장은 간결해졌고 인용이 늘었다. 쓸데없이 생각을 늘어놓지 않아 읽을만했다.
작가가 결혼을 'Wild Problem'이라고 생각하는지, 결혼에 대한 설명이 많다. 현재의 나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기에 '어쩌라는 건지' 싶었지만,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준비하는 이들이라면 결심의 마음가짐에 대해 느끼는 바가 많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