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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연금술사 Jul 19. 2024

#14. 긴장된 재회

이기적인 사랑



삶은 우리가 숨을 쉬는 횟수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숨을 멎게 하는 순간들로 측정된다. - 영화 '히치




나의 호이안 여행은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작은 소녀와의 만남이 해야할 일을 명확하게 해주었다.

들뜬 마음으로 잠을 설친 나는 일어나자 마자 서둘러 짐을 챙겼다.

그리고 그 소녀가 있는 노상 식당을 찾았다.

할머니는 진한 육수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커다란 솥앞서 부지런한 손을 놀리고 있었다.

"신짜오 바!" (할머니 안녕하세요?)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고 미소를 지었다.

소녀는 어젯밤의 흥분으로 신나게 떠들다가 늦은 밤이 되어 잠이 들었다고 한다.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곤하게 자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소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기념품 가게에서 산 알록달록한 팔찌를 할머니에게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한번 더 그 소녀를 보고 싶었지만 나는 어떤 명령을 받은 군인처럼 마음이 급해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는 차안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재잘되고 있었다.


"새 곰인형은 싫어요. 그 인형은 우리 오빠가 사준 거라고요. 오빠는 그 곰인형이 오빠 대신에 나와 우리 가족을 돌봐줄 거라고 했단 말이에요. 새 인형에는 오빠 냄새가 안 난다고요."


순진한 소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아빠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긴 했지만 이 분명하고 명쾌한 감정을 그녀에게 생생하게 전하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핸드폰은 허무하게 부재 중 알림 메세지만 반복해서 들려왔다.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급히 *비행기 표를 끊었다.

한시라도 빨리 그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파란 하늘처럼 마음은 청명했다.


호찌민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의 핸드폰은 여전히 생기없는 여자의 부재중 메세지만 내 귀를 때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망설여지긴 했지만 우선 카페로 갔다.

하지만 그곳에 그녀는 없었다.

대신 그녀의 여동생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에게 그녀의 소식을 알렸다.

그녀는 대만으로 떠나기 전 부모님과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갔다고 했다.  

부모님과 가족들을 보고 싶어 했을 그녀였다.

조금은 허무했지만 왜 전화를 받지 않는지 물어도 그녀의 동생은 모른다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녀와의 연락이 닿지 않아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우선 은행으로 향했다.

투자금을 인출한 후, 대니에게 연락을 했다.

대니 역시 연락이 닿지 않았다.

모든게 명료했던 아침과 달리 호찌민에서의 시간은 애매하고

안개 속에 쌓인듯이 희미하기만 했다.

연락이 닿지 않는 대니에게 메세지를 남겼다.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투자금을 돌려주기 위한 목적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는 그런 이유라면 나를 피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30분쯤 시간이 지나 그에게 답장이 왔다. 나를 만날 이유가 없다는 까칠한 답변이었다.

답장을 확인하자 마자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금방 메세지를 확인했으니 전화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이유를 물어왔다.

나는 막무가내로 만나고 싶다고 했고  마지못해 그는 알겠다고 했다.

결국 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휴가 중이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카페에 도착해서 계속 그녀에게 연락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그녀의 핸드폰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 대니는 카페로 들어왔다.

약간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그녀를 향한 깊은 갈망으로 가득차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물었다.

"혹시 호아와 연락이 되?"

"아니...연락이 끊긴지 3일정도 된 것 같아."


나는 대뜸 투자금을 꺼내 그의 앞에 놓으며 말했다.


"대니, 이 돈을 너에게 돌려줄 생각이야. 네가 그녀를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해준것은 고마워.

하지만 이제 나는 그녀의 대한 나의 마음이 분명히 알았어. 나는 그녀에게 돌아갈거야."


대니는 잠시 돈을 바라보다가, 나를 향해 차분하게 말했다.

"Mr. Jung, 나도 그녀를 정말 사랑해. 그녀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야. 그런데 그녀가 정말 너와 함께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그의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곧 진심을 담아 답했다.

"대니,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행복해지길 원해."


"그래? 하지만 나는 당신의 일방적인 태도가 그녀를 더 힘들게 할 거라는 걸 알아. 그녀에게 돌아가겠다고? 그녀를 떠날 때도 당신 마음대로 떠났으면서 이제와서 또 마음대로 돌아가겠다고? 당신은 항상 자신만 생각하는 군. 그녀가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해 본적 있어? 당신의 결정에 그녀도 같은 마음으로  동의할까?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리는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야 해."


대니는 깊은 한숨을 쉬며 나에게 충고했다.

그는 나보다 어렸지만 그의 생각은 나보다 깊고 사려가 깊었다.

나는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의 말에는 틀림이 하나도 없었다.

"너의 말이 맞아. 하지만 나는 그녀를 포기할 수 없어. 난 그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대니, 그녀가 정말로 네게 마음이 있다면 난 그 선택을 존중할 생각이야. 하지만 나도 현재로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나는 이제야 알게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대니나 내가 아니라 그녀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순간, 내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녀는 내일 오후 쯤에 호찌민으로 돌아올거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메세지를 확인하자 마자 전화를 걸었다.

한참 통화음이 울린 후에야 망설였다는 듯이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안도의 한숨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나는 천천히 그간에 있었던 일과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내일 저녁에 꼭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생기없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한뒤 서둘러 통화를 종료했다.


나는 대니에게 말했다. "그녀가 호찌민으로 돌아올거야. 내일 저녁에 만나기로 했어."


대니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그렇다면 나도 함께 가겠어. 그녀의 마음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다음 날 우리는 함께 그녀를 만나러 갔다.

그녀는 카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혼란스러움과 슬픔이 가득했다.

우리는 그녀 앞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대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에게 청혼한 것은 진심이었어. 나는 너를 사랑해. 하지만 나는 너의 선택을 존중할 거야.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길 바랄 뿐이야."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대니오빠. 오빠의 마음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혼란스러워요. 두 사람 모두를 잃고 싶지 않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너의 마음이 중요해. 우리는 네가 행복해지길 바랄 뿐이야.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리는 네 결정을 존중할거야."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오빠들 모두 나에게 너무 소중한 사람들이고 축복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잠시 생각에 빠진 듯 멍하니 저녁 하늘을 바라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오빠들 모두를 사랑하지만 그 마음을 받아줄 수 없는 것을 이해해 주세요. 이제는 오빠들의 마음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이렇게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며 말하려고 나온거에요."

뜻밖에 대답에 대니와 나는 멍하게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지만 처음 생각처럼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녀가 먼저 천천히 일어나더니 카페를 나가버렸다.  

대니는 나가는 그녀를 보고 벌떡 일어섰으나 차갑게 뒤돌아선 그녀를 차마 뒤쫓지는 못했다.

잠시 후 대니는 축쳐진 어깨를 하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게 앉아서 그녀가 사라진 카페의 출입구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떤 생각도 어떤 감정도 없이 그냥 멍하게 앉아 있었다.

 

시간은 멈춘 것처럼 느껴졌고, 내 머릿 속은 혼란스러웠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정말 그녀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결국 나의 욕심일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행복을 진정으로 바란다고 말하면서도,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

나는 한 번도 진정으로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나는 그저 내 감정과 욕심에만 충실했던 것이다. 그걸 사랑이라고 치장한 채 말이다.

그녀가 행복해지길 바란다고 하면서도, 정작 나는 그녀를 통해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밤이 깊어 갈수록 나는 점점 더 자책감에 시달렸다. 내 사랑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는 사실이 가슴을 찔렀다.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았을 때 나는 왜 그리도 초조해했을까. 모든 것이 나의 이기심과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정말 그녀를 사랑했는가? 아니면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녀를 필요로 했던 것인가?" 

답은 명확했다. 나는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의 행복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그녀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고, 그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나는 그동안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 욕심을 사랑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결심했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그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나는 물러서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그녀를 위해 기꺼이 물러설 것이다.


휴가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사랑도 끝나가고 있었다.




*비행기

휴가철이 돌아왔다.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기회온 것이다.

하지만 소중한 휴가 시간을 대여섯 시간, 심지어 하루 이틀까지 잃게 된다면 얼마나 속상할까?

베트남 최대 민간 항공사인 비엣젯항공은 지연과 결항 문제로 악명이 높다.

대체 항공기의 부족과 빡빡한 항공 스케줄 등 저가항공사의 구조적 문제가 주요 원인이다.

비엣젯항공은 2014년 한국 시장에 처음 진출했다.

현재 인천-하노이, 호찌민, 다낭 등 8개 노선과 부산-호찌민, 하노이, 달랏 등 15개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베트남 인기 관광지 직항 노선이 많아 한국 여행객에게는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가격까지 저렴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 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비엣젯항공의 누적 여객 수는 76만895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54% 증가했다.

이는 베트남 국영 항공사인 베트남 항공보다 많은 수치다.

한국 사람들이 자주 찾는 푸꾸옥 직항 노선을 하루 3회나 운행하고 있으며, 냐짱과 달랏 등 관광지 직항 노선도 운영하고 있다.

비엣젯 항공기


하지만 비엣젯항공의 가장 큰 문제는 연착과 결항이다.

이는 국제선뿐만 아니라 국내선에서도 발생하며, 많은 승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2022년 베트남 교통부는 연착과 결항 항공편이 급증하면서 많은 승객들이 공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경고했다.

비록 비엣젯항공의 항공 면허를 취소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문제는 베트남 정부에게도 큰 골칫거리다.

베트남을 찾는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항공기 착륙 신호를 기다리는 비행기들이 공항 위를 맴도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항공권 가격이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데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비엣젯항공의 항공권은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격이 2배 이상 상승하여 우리나라 국적기와 큰 차이가 없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베트남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60% 이상 증가한 760만 명에 달한다. 이 중 한국인 관광객이 195만2000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항공기 부족 문제는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내년 말까지도 지속될 전망이다.

베트남 항공의 엔진 문제로 인해 11대의 항공기가 운항되지 못하는 상황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지 언론에서 조차도 항공권 가격 인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베트남 항공 시장은 베트남 항공과 비엣젯항공이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어 거의 독점에 가깝다.  

결국 항공기 확충이나 가격 인하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고스라니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물론 저가 항공은 여전히 일반 항공사보다 가격 면에서는 저렴하다.

다양한 운항 시간대와 노선을 제공하므로 여행 스케줄에 맞추기에도 좋다.

그러나 연착과 결항 문제는 저가 항공사뿐만 아니라 일반 항공사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선택은 여행객 본인의 몫이다.

휴가는 지친 심신을 회복시키는 소중한 시간이다.

올 여름 휴가를 어디로 가든지 재충전과 회복의 시간이 되도록 행운이 함께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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