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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양상군자의 방문

그들의 타깃이 되다.

by 한자루

모든 악당이 도둑은 아니지만, 모든 도둑은 악당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몇 달이 정신없이 흘렀다. 우리는 결혼식 날짜를 정하고 하나씩 준비를 이어갔다.

결혼식 준비는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결혼식을 원했다. 하지만 장인, 장모님의 한국 비자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시골에서만 살던 분이라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두 분은 포기하셨다.

결국 나는 두 번의 결혼식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한 번은 베트남에서 또 한 번은 한국에서.

그래서 나는 같은 사람과 두 번의 결혼식을 가지게 된 행운아(?)가 되었다.

첫 번째 결혼식은 그녀의 고향인 베트남 최남단 까마우에서 열렸다. 한국에서 부모님이 이 결혼식을 위해 다시 베트남을 방문하셨다. 까마우는 생각보다 멀고도 멀었다.

호찌민에서 버스로 8시간, 까마우 시내에서 택시로 한 시간 반, 그리고 작은 통통배로 40분을 간 후에야 그녀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말로만 듣던 오지였다.

피곤한 기색이 영력한 부모님과 달리 나는 연신 싱글벙글 거리며 피곤한 줄 몰랐다.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그녀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 주었다.

오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은 서양 결혼식과 닮아 있었다. 아마 프랑스 식민의 역사가 전통 결혼식을 서구식으로 바꿔 놓은 듯했다. 물론 한국의 그것과도 결이 달랐다. 우선 주례가 없었다. 단지 사회자가 이끄는 대로 샴페인을 마시고 케이크를 자르는 등 서양 영화에서 봐왔던 결혼식과 유사한 식순으로 진행되었다.

결혼식은 별도의 식장이 아니라 길가에 화려한 천막으로 꾸며진 공간에 진행되었다.

푸른 하늘 아래에서 울려 퍼지는 전통 악기의 음률, 화려한 옷을 입은 하객들, 그리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이 순간이 영원히 기억될 것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결혼을 마치고 몇 달 후 그녀와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가족과 친구들이 모인 가운데 두 번째 결혼식을 치렀다.

한국 결혼식은 베트남에서 보다 화려했다.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보면서 눈이 부시다는 생각을 했다. 주례는 전에 근무했던 학교의 교장 선생님께서, 사회는 친한 친구가 맡았고 친구들의 축가도 있었다.

뭔가 익숙한 한국식 결혼식이라 나는 긴장 중에서도 편안함을 느꼈지만 내 손을 잡은 그녀는 긴장으로 살짝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가족도 없이 혼자 처음 방문한 한국에서의 결혼식이었으니 떨리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우여곡절 뜰에 우리는 마침내 부부가 되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결혼식 후, 우리는 베트남으로 돌아와 그녀가 살던 현지 마을의 임대 주택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이 마을은 조용하고 평화로웠으며, 사람들은 친절했다.

매일 아침 창문을 열면 들려오는 새소리와 깨끗한 공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하지만 마을의 평화로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작은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회사까지 거리가 꽤 있어 매일 출퇴근이 힘들었고,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편리함도 부족했다.

어디를 가려고 해도 택시를 구경하기 힘들었다. 오토바이가 없다면 외식조차 힘들었고 간단한 물건을 사려고 해도 무조건 오토바이가 필요했다. 걸어서 다니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리고 그 마을에 한국인이 산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한옥마을에 미국인이 들어와서 살기 시작한 것처럼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 같았다. 물론 나의 외모가 베트남 사람들과 닮아 있어서인지 심지어 나에게 길을 묻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의 어색한 베트남어 발음에 금방 이방인으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큰 비가 내렸다. 밤늦게 시작된 비로 잠을 못 이루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 새벽녘이었다. 천둥소리에 문득 잠이 깼다.

비는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잠에서 깬 후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더 자야 한다는 강박에도 일어나서 물이라도 한잔 마시려고 부엌으로 갔다.

어질러진 부엌 풍경에 심장이 뛰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온갖 가방이 지퍼가 열린 채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고 서랍들이 죄다 열려있었다.

침실로 다시 달려가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호아, 괜찮아? 도둑이 들었어." 나는 그녀를 깨우며 속삭였다.

호아는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났고, 내 말을 듣고는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도둑이요? 무슨 일이야, 오빠? 오빠 괜찮아요?"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다행히 이미 도둑은 집을 나간 것 같아."

살펴보니 핸드폰이며, 지갑, 노트북등 돈이 될만한 것들은 모조리 털어갔다.

아침이 되자마자 우리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현장을 조사하며 도둑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별다른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도둑이 집 주변을 미리 탐색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런 얘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도둑과 마주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도둑과 마주쳤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 상상만으로도 식은땀이 난다.

나는 부엌에 설치된 방법 카메라를 떠올렸다. 영상이 저장된 메모리 카드를 꺼냈다.

그러나 영상을 볼 수 있는 전자 기기는 모두 도둑맞은 상태였다.

날이 밝자 나는 인근 아는 지인의 컴퓨터를 빌려 영상을 살펴보았다.

검은 모자를 쓴 남성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는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작은 플래시를 입에 물고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방법 카메라 쪽을 바라보는 것이 찍혀있었다.

그의 얼굴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됐다. 이 녀석을 잡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경찰에게 방범 카메라 메모리카드를 넘겼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경찰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아내는 아무래도 약간의 뒷돈을 줘야 수사를 시작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시간이 이렇게 흘러 그 *범인은 이미 물건들을 다 팔아치웠을 테고, 잡는다고 한들 달라질 것이 없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차를 마시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호아, 우리 이사하는 게 어떨까?"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 마을에서의 생활도 좋았지만, 이제는 더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아. 도시에 있는 아파트로 옮기면 어때?"

호아는 나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충격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오빠, 맞아요. 저도 이 일이 있은 후로 밤마다 불안해요. 여긴 정말 좋은 곳이지만, 이제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 이사 가요. 오빠와 함께라면 어디든 괜찮아요."

우리는 그렇게 결심을 내렸고, 며칠 후 도시에서 아파트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복잡함 속에서도 우리는 안전하고 편안한 곳을 찾으려 애썼다.

여러 아파트를 둘러보면서 우리의 기준에 맞는 곳을 찾아 나갔다.

결국, 한 아파트를 발견했다. 한국 건설업체가 지은 아파트였다.

건물은 현대적이고 깨끗했으며, 보안도 철저했다. 무엇보다 수영장과 넓은 공원이 있어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회사 통근차량 탑승지와 가까워 출퇴근도 편리했다.

그녀와 나는 그 아파트를 둘러본 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여기가 좋겠어, " 내가 말했다.

그녀도 동의하며 말했다.

"네, 오빠. 나도 마음에 들어요. 여기가 우리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우리는 곧바로 계약을 맺고, 며칠 후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사 과정은 조금 번거로웠지만, 그동안의 불안함이 말끔히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새로운 아파트에서의 첫날밤, 우리는 거실 창문을 열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고층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야경은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고, 차들이 도로 위를 달리며 우리에게 도시의 활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오빠, 이제 정말 안심이 돼요. 여기서라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래, 호아. 우리의 신혼을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게 되었네.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들도 이제는 다 잊어버리자."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첫날밤을 맞이했다.

비록 도둑 사건이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그 사건 덕분에 우리는 더 안전하고 편안한 곳에서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었다. 마치 우리의 앞날에는 더 많은 행복과 기회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더 이상 두려움이나 불안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를 지켜주며 사랑으로 가득 찬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가기로 결심했다.



*범인

몇 달 전 베트남에서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하던 한국인이 적발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기사를 클릭했더니 모자이크 된 사진 두 장과 함께 “지난 4일, 호찌민시 경찰이 부이비엔 거리에 있는 호텔에서 15세 소녀와 성매매를 한 한국인 홍 씨를 발견했고, 이들에게 성매매를 주선한 베트남 남성 두 명을 체포했다”는 내용이었다. 홍 씨와 그의 친구는 140만 동(약 7만 5000원)에 성매매를 하기로 하고, 여성들을 소개받았다고 한다. 댓글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 망신이다” “모자이크 된 사진만으로도 인상이 유추된다”는 글을 남겼다.



W27BUXSF5SF53KS3AXLXUTF4XY.jpg?auth=06006ec8d62a38e3cc8d1d6c2f4cbe6b870d0f916b7057d45b5b2648c81c6430&width=616 한국인에게 미성년자 매춘을 알선한 베트남 남성들



그런데 그 사진, 한국인이 아니었다. 15세 미성년자와 27세 베트남 여성에게 수차례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체포된 베트남 남성들 사진이었다.

국내 언론에서 사진에 모자이크를 하면서 해당 사진을 성매매에 연루된 한국인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범죄자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는 베트남이 해당 한국인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베트남 언론의 설명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VN익스프레스는 “베트남에서 성매매는 사회악이자 범죄이다. 다만, 매춘부와 고객은 미성년자가 연루되지 않는 한 형사 고발을 당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번에 적발된 한국인 남성 역시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어쩜 그렇게 판에 박힌 대답들이 매번 반복되는지 신기하다. '몰랐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런 핑계가 공식화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불이익이 없는 건 아니다.

베트남에서 불법 성매매를 하다 적발되면 추방된다.

베트남에서는 범죄자의 얼굴을 여과 없이 공개한다. 베트남에서 범죄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얼굴’이 공개된 한국인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얼굴뿐만이 아니다. 성과 이름을 포함한 이름 전체가 공개되는 것은 물론, 나이, 이들이 검거된 장소와 범죄 혐의까지 자세하게 공개된다. 범죄자에게 관용이 없는 나라다.


지난 3월에는 ‘성매매를 알선한 호찌민 한인 레스토랑 오너 체포’라는 기사가 떴다. 베트남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한국인 오너의 사진의 그대로 실렸다.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이 모이는 호찌민 타이 반 룽 거리에서 가게를 하던 40세 현모 씨, 41세 전 모 씨 등 4명이 한국인과 베트남 종업원을 고용해 성매매를 알선했다고 한다. 두 명의 한국인 오너의 이름과 나이, 가게의 정확한 주소와 상호까지 모두 공개되었다.

구글 맵에 해당 상호를 검색하자 77개의 후기가 있었습니다. “잘 놀았다” “광란의 밤이었다”는 등 대부분의 후기가 한국어였다. 지난 3월, 경찰이 성매매 현장을 급습했을 때도 베트남 매춘부와 함께 있던 한국인 손님 10명을 적발했다. 경찰은 이 가게가 하루 3억~5억 동(약 1600만~2600만 원)을 벌어들였고, 월수입은 100억 동(5억 3700만 원)을 넘는다고 밝혔다. 경찰 적발을 우려해 베트남 손님은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베트남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한국인, 한국 국적으로 마약 밀매에 가담한 한국인, 살인을 저지른 한국인 등이 범죄 피의자로 등장할 때마다 이들의 얼굴과 실명, 나이, 범죄 혐의가 낱낱이 공개된다.

물론, 베트남에서 범죄 피의자에 대한 신상 공개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베트남 사람들 역시 범죄에 연루된 경우 똑같이 신상이 밝혀진다. 지난 22일, 빈증성 법원은 신생아 인신매매를 중개하고, 관련 문서를 위조한 추 티 꾹 프엉(42)에게 징역 23년을, 같은 혐의로 응우옌 티 응옥 누(31)에게 21년 형을 선고했다. 아기를 팔거나 산 여성들까지 두 손을 모으고 법정에 서서 선고를 기다리는 모습이 여과 없이 공개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특정 강력범죄 피의자의 경우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살인·살인미수, 성폭력 등 특정 강력 범죄 피의자이면서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피해가 중대한 경우’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증거가 충분한 경우’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등이라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이에 해당할 경우 경찰이 피의자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신상 공개를 결정합니다.


하지만 신상이 공개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판결이 최종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경찰이 경기도 화성에서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살해한 김레아의 신상 공개를 결정했으나 이에 불복해 취소 소송을 내기도 했다. 경찰이나 검찰 역시 신상 공개에 대한 리스크를 지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신중하다. 언론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좀 우습지만, 범죄자 얼굴엔 모자이크가 되고, 범죄자를 이송하는 경찰 얼굴만 공개되기도 하고, 마스크에 모자를 쓴 범죄자 얼굴은 보이지 않는데 경찰이나 변호인, 현장 취재 중인 기자들 얼굴만 드러나기도 한다.

범죄자 신상 공개의 정도가 다른 이유는 두 국가의 수사·사법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경우 형사 사건에서 공안이라 불리는 경찰의 수사 결과가 법정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범죄 혐의가 대부분 소명되고, 이 결과가 판결로 확정된다.

명확한 범죄 혐의가 없으면 경찰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고, 상위 사법 기관이 경찰 수사를 뒤집지 못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 베트남 뉴스 기사에서 한국인의 얼굴을 발견하면 흠칫 놀란다. 좋은 일이 아닐 경우에 더욱 그렇다. 베트남 사람들은 SNS를 통한 정보 공유가 활발하다. 언론 기사로 보도되지 않아도, 나쁜 짓을 하는 외국인을 목격하면 지체 없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돌린다. 한 한국인이 베트남 여성을 때렸다고 알려지면서, 해당 한국인을 발견한 베트남 남성들이 그를 위협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든, 베트남에서든 불법적인 일은 하지 말아야 헌다.

얼굴과 이름, 나이가 도배되어 패가망신하고 싶지 않다면 법과 양심에 따라 바르게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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