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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스만 제국을 꿈꾸는 현대판 술탄

에르도안

by 한자루


그는 처음부터 왕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이스탄불의 좁은 골목에서 빵을 팔며 축구를 하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축구는 공을 차는 게 아니라, 인생의 드리블 연습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 그는 정치 무대에 들어섰고, 이슬람의 가치와 근면함을 들고 나왔다.
사람들은 말했다.
“이 사람, 기도도 하고 도로도 닦는 시장이야.”

그는 믿음을 정치로 번역했고, 가난한 도시를 부흥시켰다.
‘시장님’은 곧 ‘지도자님’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술탄님’이 되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경제가 무너지고, 군부가 여전히 그늘을 드리우던 시절에 그는 등장했다.

그는 신앙심 있는 실무가, 청소차 냄새가 나는 혁신가 였으며 국민에게 ‘신과 성장’을 동시에 약속했다.

도로를 깔고, 병원을 짓고, 외국 자본을 불러들이며 터키를 중동의 스타트업처럼 키워냈다.

그의 입에서는 자주 이런 말이 나왔다.

“신의 뜻이 실현되고 있다.”


2000년대 초, 그는 진짜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에르도안’은 브랜드가 아니라 희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시선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향하기 시작했다.
지도 위의 목표는 유럽연합이 아니라, 한때 세계의 중심이었던 오스만 제국이었다.
그는 근대화를 팔며 제국의 부활을 준비했다.


에르도안은 민주주의를 사랑했다. 단, 그가 이길 때만.

그의 정치 여정은 교과서적으로 “합법적”이었다.
시장에서 총리, 대통령 그리고 헌법 개정과 영구 집권 가능까지 모두 말이다.
선거는 항상 열렸지만, 결과는 항상 같았다.

야당이 비판하면 언론이 사라졌고, 기자가 기침을 하면 다음 날 뉴스는 대통령의 낚시 장면으로 바뀌었다.
‘언론 자유’는 여전히 존재했다. 다만 자유롭게 그를 칭찬할 자유였다.

그의 나라에서는 인터넷이 빠르지만, 말은 느려지고, 생각은 막힌다.
터키 국민들은 어느 순간 깨달았다.
‘표현의 자유’보다 ‘휴대폰 전원 버튼’이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2016년, 군부 일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탱크가 거리로 나오고, 하늘엔 전투기가 돌았다.
그때 대부분의 지도자라면 숨었겠지만, 에르도안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페이스타임. 그는 TV에 직접 나오지 못하자 기자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국민들이여, 광장으로 나오시오!”
그 장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한 손엔 아이폰, 한 손엔 신의 이름.
그날 밤, 쿠데타는 실패했다. 다음 날부터 그는 세상을 새로 썼다.

정적은 숙청되고, 언론은 재편됐다. 국가의 모든 시스템이 한 사람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터키는 민주주의의 옷을 입은 오스만 시즌 2가 되었다.


2022년, 에르도안은 세계에 말했다.
“우리 이름은 터키(Turkey)가 아니라 튀르키예(Türkiye)다.”

그는 영어 단어 ‘Turkey’가 ‘칠면조’를 뜻한다는 사실을 싫어했다.
“칠면조라니, 제국의 후손에게 이건 모욕이다.” 그는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나라 이름을 바꿨다.

UN은 이를 승인했고, 지도에는 “Republic of Türkiye”가 새겨졌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습관적으로 ‘터키’라 불렀다.
그렇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권력의 냄새는 여전했다.

그의 말 한마디는 여전히 법이었고, 그의 미소 하나가 시장을 움직였다.
그는 ‘국가’와 ‘자신’을 점점 구분하지 않았다.


에르도안의 나라, 튀르키예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1950년, 터키군은 먼 나라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피 흘려 싸운 형제의 기억이 두 나라를 묶었다.
그래서 한국은 지금도 그를 “형제의 나라 대통령”이라 부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다. 형제의 나라는 민주주의를 공유하지 않는다.
한국은 ‘국민이 왕인 나라’가 되었고, 튀르키예는 ‘왕이 국민을 선택하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터키”라 부르지만, 그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향수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한국이 기억하는 터키는 전쟁에서 함께 싸운 그때의 터키이지, 궁전에서 페이스타임을 하는 지금의 튀르키예는 아닐 것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그는 가난한 소년에서 시장이 되었고, 총리에서 대통령이 되었고, 대통령에서 술탄이 되었다.

그의 권력은 종교와 향수와 두려움 위에 세워졌다.

그는 국민에게 확신을, 세계에는 오스만의 향기를 팔았다.
그리고 여전히 말한다.

“신이 원하셨고, 국민이 따랐다.”

그 말 뒤에는 항상 작은 속삭임이 붙는다.

“그러니, 나는 왕이다.”

그의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스만 시즌 3이 이미 촬영 중이니까.


에르도안은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시대와 역사 사이에서 ‘제국의 환영’을 실현 중인 배우다.
그가 쓰는 대본은 무겁고, 연기는 강렬하고, 끝맺음은 아직도 “계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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