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거리마다 걸린 시진핑의 포스터.
그는 항상 미소 짓는다. 아이를 안고, 농민과 악수하며 “중국몽”을 속삭인다.
하지만 그 포스터 아래, 실제 현실은 디지털 파놉티콘이다.
2018년, 중국 헌법은 ‘국가주석 2연임 제한’을 삭제했다. 즉, 이론상 영구 집권이 가능해졌다.
세계는 대놓고 비난하지 못했고, 국내 언론은 리허설처럼 박수를 쳤다.
“모두가 함께 꿈꾸는 미래”라는 구호는 곧 “모두가 함께 감시당하는 현재”가 되었다.
시진핑은 혁명 2세대 ‘태자당’이다.
아버지는 마오쩌둥 시절 고위 간부였지만, 숙청당했고, 어린 시절 그는 똥을 퍼고 굶주리며 당 안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그는 복수 대신 충성을 택했고, 조용히, 꾸준히, 당의 시스템에 순응했다.
2012년, 국가주석에 오른 그는 초기엔 무난한 관리형 리더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적들은 빠르게 사라졌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는 듯이 움직였다:
“지도자는 말로 설득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스템을 다시 짜는 사람이다.”
시진핑은 전통적인 독재자처럼 고함을 지르지 않는다.
대신 그는 “통제 가능한 사회”라는 코드를 짠 프로그래머에 가깝다.
곰돌이 푸는 검열당하고 각종 밈은 삭제, 검색어는 모조리 정리, 댓글 통제, 정적들은 반부패로 정리하고 뉴스는 칭찬으로 균일화한다.
그는 말보다 플랫폼을 통해 권력을 구현했다.
얼굴 인식, 인터넷 실명제, 사회 신용점수, CCTV 드론 감시… 국민의 말, 이동, 구매, 감정까지 관리되는 시스템.
공산당은 구글을 거부했지만, 훨씬 더 정밀하게 사람을 추적할 수 있다.
2020년, 코로나는 중국 정치의 진짜 엔진을 드러냈다.
도시 전체가 QR코드 하나로 관리되었다.
녹색은 출근 가능, 노란색은 대기, 빨간색은 격리.
인간이 교통신호가 된 사회.
초기엔 칭찬받았지만, 상하이에선 철문을 두드리며 울부짖는 시민들, 막힌 음식 배달, 못 들어오는 응급차…
이건 바이러스가 아니라, 체제가 사람을 봉쇄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시진핑은 포스터 속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질문은 허용되지 않았다. 질문 자체가 시스템상 비인가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의 통치엔 끝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무제한 통제는 피로를 동반한다.
청년 실업 폭증, 부동산 시장 붕괴, 외국 자본 이탈, 고위 인사 ‘실종’과 숙청, ‘시진핑 실각설’의 저변 확산...
그의 시스템은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시스템이 돌아가는 이유는 믿음이 아니라 관성때문이다.
시진핑은 고전적 권위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감시와 이미지, 알고리즘으로 통치하는 21세기형 플랫폼 독재자다.
그에게 있어 국가는 포스터이고, 정치란 정적 제거가 아니라 데이터 정제다.
그의 꿈은 ‘중국몽’이지만, 그 몽(夢)은 모두가 같은 꿈만 꾸도록 만드는 기획이다.
그는 외치지 않는다. 대신 시스템을 켠다. 조용하게, 느리게, 그러나 절대적으로.
시진핑은 지도자가 아니라 운영체제다.
그리고 지금, 중국은 그 위에서 돌아간다. 재부팅 버튼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