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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냉장고에서 나온 총리

보리스 존슨

by 한자루




2019년, 영국 총선을 앞둔 어느 아침.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자 보리스 존슨은 냉장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총리가 되겠다는 사람이 인터뷰를 피해서 냉장고에 숨었다”는 이 황당한 장면은 곧바로 밈이 됐고,
“영국 정치 요약본”이라는 제목으로 퍼졌다.

하지만 더 이상한 건 그다음이었다.

그는 진짜로 총리가 된것이다.



보리스 존슨은 영국 정계에서 흔치 않은 캐릭터였다.
옥스퍼드 출신, 고전학 전공, 라틴어에 능통한 정통 엘리트.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걸 헝클어진 머리와 우스운 말투로 덮었다.

사람들은 헷갈렸다. 저 사람, 바보인가? 아니면 바보인 척 하는 천재인가?

정답은 둘 다였다.
엘리트인데 아닌 척, 아닌 척인데 너무 익숙한 엘리트.

그는 런던 시장이 되었고, 자전거를 타며 "평범한 시민"의 상징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2016년, 그는 진짜 한 판을 뒤집는다.

“EU에 주는 돈, NHS(국민보건서비스)에 쓰자!”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그는 피자 위에 파인애플을 빗대어 브뤼셀을 조롱했고, 이민, 주권, 경제 불안 같은 복잡한 이슈를 한 줄 슬로건으로 눌러버렸다.

그 숫자는 과장됐고, NHS는 더 힘들어졌지만, 정치는 설득보다 이미지가 먼저였다.


브렉시트 투표가 통과되자, 보리스는 잠깐 사라졌다.
정계의 배신과 기싸움 속에서 물러서는 척했지만, 외무장관으로 돌아와 조용히 영향력을 쌓았다.

그리고 2019년, 브렉시트 수습에 실패한 테리사 메이 총리가 사임하자, 그는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하며 총리 자리에 오른다.

“실수처럼 시작된 캠페인이 총리를 만들어냈고, 그 총리는 냉장고에서 튀어나왔다.”


공식 석상에서 보리스는 늘 버퍼링 상태였다.

“Uhm… well, the thing is… Brexit is like a… cheese pie!”


그는 브렉시트를 ‘희망과 치즈처럼 부풀어 오른 파이’라고 했고, 코로나 대응은 ‘크레용 상자처럼 복잡하다’고 비유했다.
심지어 손소독제를 머리에 바를 뻔한 브리핑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이것이었다:
헛소리처럼 들리는 말을 진심처럼 말하고, 그걸 사람들은 기억하게 만든다.


보리스 존슨은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었다.
코미디언인 척하는 지도자, 혹은 지도자인 척하는 코미디언이었다.

그는 브렉시트를 현실로 만든 상징이었지만,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맞닥뜨린 혼란 속에서 그가 진짜로 바라던 그림은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정치 전략은 명확하지 않았지만, 퍼포먼스는 확실했고, 그의 존재는 결국 하나의 쇼가 되었다.


보리스 존슨은 실수처럼 시작된 총리였고, 그 실수가 정권이 되었으며, 그 정권은 브렉시트보다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직도 뭔가 보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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