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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액션 히어로 대통령
필리핀버전의 매드맥스

두테르테

by 한자루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필리핀은 정치를 뽑은 게 아니라 액션영화의 감독 겸 주연배우를 뽑은 셈이었다.
선거 유세 동안 그는 이렇게 외쳤다.

“범죄자를 죽이는 걸 뭐가 문제야? 내가 직접 할 수도 있어!”




그리고 정말로 직접 했다고 주장했다.
다바오 시장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범죄자를 사살했다고 자랑처럼 말했다.
이쯤 되면 범죄와의 전쟁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출연한 리벤지 무비다.

그가 집권하자마자 시작된 것은 ‘마약과의 전쟁’.
하지만 여기서 ‘전쟁’이란 단어는 은유가 아니라, 거의 문자 그대로였다.
경찰은 영장 없이 총을 쐈고, 시체는 매일 거리에 널렸다.
뉴스는 총성과 함께 시작됐고, 필리핀 인권위는 “잠 좀 자자”고 호소했다.


두테르테는 1945년, 필리핀 남부 레이테 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정치인이었고 어머니는 교사였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반항아였다.

10대 시절, 학교에서 쫓겨났고 한때는 총을 가진 사제에게 쫓겼다는 일화도 있다.
그를 훈계하던 신부를 향해 욕을 했고, 결국 가족의 힘으로 가까스로 대학까지는 졸업했다.

하지만 그가 진짜 배운 건 책이 아니라 거리의 언어였다.
그리고 그 거리의 논리를 정치에 그대로 들고 왔다.


두테르테는 스스로를 “무법자가 된 법 집행자”처럼 말한다.
그의 정치 철학은 간단하다.

“법은 느리고 복잡하다. 하지만 나쁜 놈을 없애는 건 간단해야 한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며, 절차보다 직감이 더 중요하다는 직선주의자이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해야 하니까 하는 형식, 진짜 중요한 건 결과였다.

이 방식은 다바오 시에서 통했다.
그가 시장으로 있던 20년 동안, 다바오는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그 안전은 공포 위에 세워진 질서였다.


두테르테는 기자에게 욕설을 퍼붓고, 유엔 보고서를 조롱하며, 교황에게조차 이렇게 말했다.

“교통체증을 만든 그 XX 때문에 비행기에서 5시간이나 기다렸잖아.”

이쯤 되면 외교가 아니라 막말 예능 토크쇼다. 그런데도 지지율은 높았다.

그는 모두가 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겁 없이 하는 정치인처럼 보였다.
욕은 지지자에게 ‘솔직함’이고, 비판자에게는 ‘무례’였다.

CNN은 “위험한 독재자”라 했고, 로컬 라디오는 그를 “우리 형님”이라 불렀다.
그는 민주주의와 패싸움의 경계선에 선 이단아였다.


두테르테의 딸, 사라 두테르테는 현재 필리핀 부통령이다.
아버지 못지않게 거침없는 스타일로, 두테르테 가문의 정치 시즌2를 이끌고 있다.

두테르테 본인은 은퇴했지만, 여전히 정치 무대 근처를 배회하고 있다.
2023년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초법적 처형’ 혐의로 수사를 재개했고, 두테르테는 이에 대해 단호하게 말했다.

“ICC 따윈 우리 주권에 개입하지 마라. 들어오면 체포하겠다.”

여전히 그는 권력 근처에서 침묵보다 총성을 더 잘 다룬다.


두테르테는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비민주적 지도자였다.
그는 법보다는 본능을, 제도보다는 주먹을 믿었다. 그의 시대에 범죄는 줄었지만, 시민의 두려움은 늘었다.

침묵은 길어졌고, 인권은 얇아졌다.
그가 남긴 것은 질서가 아니라, 공포로 포장된 통제였다.

그는 국가를 수술하려 했다. 하지만 메스를 고르지 않고, 망치를 들었다.
정확한 절개 대신, 거친 타격이 남았고 그 흔적은 아직도 필리핀 거리에 남아 있다.


거침없는 두테르테의 어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자.

“내가 다바오에서 직접 사람을 죽였어. 믿기 싫겠지만, 그랬어.”
“여성 인권? 그거 장난도 못 치게 만들어.”
“UN이 뭐? 우리 주권에 간섭하지 마.”
“나쁜 놈들은 많이 줄었지. 그게 중요한 거 아냐?”


필리핀은 한때 그를 ‘아버지’라 불렀지만 세월이 지나면 물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 우리가 대통령으로 뽑은 거 맞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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