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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개그맨 출신 대통령의 실전 리더십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by 한자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대통령이 되기 전, 대통령 역할을 연기하던 배우였다.

그가 주연을 맡은 TV 시트콤 《국민의 종》은 우연히 대통령이 된 고등학교 교사의 이야기였다.
시민들이 부패에 분노하다가 실수로 찍은 교사가, 나라를 바꾸는 판타지.
그건 드라마였지만, 현실은 더 황당했다.

2019년, 젤렌스키는 진짜 대선에 출마했다.
정당도 급조했고, 정치 경험은 전무. 공약은 단순했다:

“새 얼굴. 안 해본 사람. 웃기지만 진심.”




그런데 놀랍게도 결과는 압승이었다.
정치 경험 제로, 외교 경험 제로, 인기 100% 드라마 속 대통령이, 현실에서 진짜 대통령이 됐다.
정치는 ‘입문’조차 안 한 초보가, 최고 레벨에 바로 입장한 셈이었다.


처음엔 모두가 코웃음을 쳤다.
서방 언론은 "우크라이나판 트럼프"라고 불렀고, 정치권은 그를 ‘쇼맨’, ‘웃기는 사람’ 정도로 치부했다.

연설에도 유머를 섞었고, 기자회견은 무거운 담론보다 드립력과 캐릭터성이 먼저 나왔다.
정치 원로들은 고개를 저으며 경고했다.

“정치는 예능이 아니야.”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되자, 그 예능인은 도망가지 않았다.

서방이 피신을 제안하자 그는 단호히 말했다.

“전쟁은 여기에 있다. 난 총알이 필요하지, 차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 한 마디에 세계가 멈췄다. 개그맨에서 전쟁 영웅으로.
그 순간, 그는 진짜 대통령이 됐다.


젤렌스키는 전쟁이 시작된 뒤로 정장을 입지 않았다. 그는 늘 녹색 군복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텔레비전에 나와도, 국제회의에 나가도, G7 정상들과 찍은 단체사진에서도, 그는 늘 똑같은 복장이었다.

그러자 기자들이 물었다.

“왜 회담에 정장을 입지 않습니까?”

어떤 외신은 그의 복장을 “격식 없는 퍼포먼스”라며 비꼬았고, 어떤 정치인은 “외교적 결례”라고 했다.
전쟁 중에도 ‘드레스 코드’는 지켜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 질문에 젤렌스키는 조용히 대답했다.

“내가 이 옷을 입는 이유는 내 나라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는 ‘양복이 없어서’ 티셔츠를 입은 게 아니었다.
그럴 시간이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정장은 고위급 외교에서 ‘품격’과 ‘권위’를 상징하지만, 젤렌스키는 그보다 더 절박한 상징을 입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만이 전할 수 있는 메시지. 옷은 낡았지만, 그는 매일 카메라 앞에 섰다.

그의 복장은 국가의 현재 위치였고, 그의 자리였다.

정치의 프로토콜을 무시한 그의 행보는, PR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이미지 전략이 됐다.
세계는 ‘우크라이나’를 기억하기보다 ‘젤렌스키’를 기억하게 되었다.

“이건 연기가 아니다. 이건 내가 지금 살아 있는 증거다.”

그는 여전히 총알이 오가는 나라 한복판에서, 매일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연출이 아닌 리얼타임 전쟁 콘텐츠. 그리고 그는 그 중심에서 살아남고 있다.


정리하자면, 대통령 역할을 하다 보니 진짜 대통령이 됐고, 전쟁이 터지자 영웅 역할까지 떠맡게 됐는데, 그 모든 게 대본 없이 생방송이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도 말한다.
"그 사람 원래 배우였지?"

맞다. 배우였다.
그런데 그가 보여준 리더십은, 연기가 아니라 리테이크 없는 1인칭 생존극이었다.
국가의 운명을 감당한, 가장 리얼한 즉흥연기.

정치는 드라마가 아니라고 말하던 사람들.
이제는 물어야 할 때다.

“배우가 대통령이 된 게 문제인가? 아니면 대통령들이 배우처럼 연기만 해온 게 문제인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의 엔딩 크레딧도 아직 올라가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시즌2는 제작진도, 국민도,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출연 중이다. 그것도, 주연이자 각본, 연출, 심지어 특수효과까지 담당하며.


젤렌스키는 배우였다는 걸 잊고 사는 중이다.
그리고 국민은 그가 배우였다는 걸 매일 떠올리며, ‘차라리 드라마였으면’ 하고 기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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