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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냥이 Jan 14. 2018

새로운 관계에 고민이 앞선다면 생각해 볼 것들

관계는 이해하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이다.

그에게 그날은 그저 그런 일상적인 날이었다. 새벽 느낌을 고요하게 받으며 아무도 없는 버스에 올라 차창의 맨 끝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누군가 열어 놓았나. 창끝 사이로 봄의 숨결과도 같은 바람이 뺨을 적신다. 묘한 느낌이랄까. 누군가가 이 버스에 오를 것만 같은 가벼운 흥분이 조금씩 느껴진다. 버스를 아우르는 햇살 덕분일까. 항상 차가웠던 손끝에도 작은 온기가 닿는다.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치고 귀를 거슬리는 날카로운 기계음을 토해내며 버스는 정차한다. 낡은 자동문이 기사님의 가벼운 움직임에 부드럽게 열린다, 그 순간, 시간은 마치 준비된 것처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머릿결, 차분하게 사각거리는 발걸음, 흔적을 남기듯 공간을 부스며 반짝이는 햇살, 그 순간 심장은 쉼 없이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손끝엔 땀이 잠기고 눈동자는 혼란에 잠긴다. 마음은 빨려 들어가고 두근거리는 에너지는 느껴지지만 마치 조절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원했다. 목소리를 듣기를, 눈빛이 닿기를, 감정이 전달되기를, 시간은 언제나 야속하다.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어느덧 흘러 버린다. 버스는 목적지에 그를 내린 체 달려간다. 멀어져 가는 버스를 바라보면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이게 누군가가 말했던 그것의 느낌인가, 나 혼자만 이것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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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관계에 고민이 앞선다면 생각해 볼 것들     


가끔 우리는 관계에 대해 잘못된 해답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그를 이해해야 한다.’ 또는 ‘나를 이해해야만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다’라는 답이 그러하다. ‘사람이 누군가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야만 가능한 것일까!’      


위에 언급된 글은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빠지게 되는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이후 그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온전하게 이해하게 되었을까. 나는 그리 믿지 않는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자신이 스스로의 감정을 온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럼 관계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감정을 인지하고 있는 스스로를 어떻게 해석해야만 하는 것일까. 위의 글을 읽은 몇몇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릴 것이고, 다른 몇몇은 드라마와 같은 상상력으로 글을 인지하며, 다른 누군가는 쾌감과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감정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이해해야만 하는 것도 아닌 느끼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사랑’ 또는 ‘첫사랑’이란 단어로 위의 상황을 가볍게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 느낌을 온전하게 설명하기에는 그 단어들에게 부족함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때론 관계라는 것에 불편함과 부담감을 가지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들은 타인과의 관계에 불편함을 느끼며 자신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자신에게 만족스럽게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다면 타인과의 관계가 편안해질 것이라 믿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그의 소망처럼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관계의 기본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관계의 기본은 이해하거나 인지하는 것이 아니다. 관계의 기본은 오롯이 느끼는 것이다. 행복 열정을 느끼고 변화를 느끼며 그 모든 감정을 담고 있는 자신을 느끼는 것,      


자신을 온전히 느끼게 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한 겨울 고적한 가로등 불빛 사이로 고요한 함박눈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을 때, 시끄러운 도로 한복판에서 귀에 꽂히는 부드러운 음악을 듣게 되었을 때, 사람이 가득한 대중교통의 막막함 속에서 한 줄기 가냘픈 향기를 느끼게 되었을 때, 하나의 초점에 모든 감정이 집중되는 그 순간을 느끼게 되면 누구에게나 그 순간, 자신의 다른 모든 감각들이 고요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오롯이 하나의 느낌에 다가서는 순간,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감각이 하나로 다가서는 순간.     


나라는 존재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지금의 나를 느끼는 존재이다.      


이해하려 하지 않고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여라.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경험하게 된다면 자신 스스로를 더 깊게 느끼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존중하게 되는 과정이며 비로소 타인과의 관계에 두려움을 담지 않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상대에게 자신이라는 존재를 이해시키려 노력하기보다 전달하려 노력하라. 감정과 느낌은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스스로의 느낌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상대가 전달해주는 느낌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면 관계가 전달하는 불편함은 어느덧 잦아들게 되고 편안함 속에 관계가 전달하는 느낌 자체를 오롯이 감지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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