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버터링
뉴올리언스 백화점에서 일하는 조지아 버드는 근무 중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친다. 급히 병원으로 실려 간 조지아는 뜻밖에도 머리 속에 큰 혹이 있으며, 수명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웨인 왕 감독의 영화 <라스트 홀리데이>는 이렇게 시작한다. 조지아는 심사숙고 후 그동안 모아 두었던 전 재산으로 그동안 노트에 적어왔던 버킷 리스트를 실천하기로 마음먹는다. 1등석 비행기를 타고 체코의 최고급 호텔로 여행을 떠난 조지아, 그녀는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은 여성이다. 그리고 호텔 레스토랑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주방장 디디에가 있다.
다른 투숙객들은 건강을 생각해 버터, 크림, 우유, 지방 등을 빼달라고 요청하지만 조지아는 디디에 주방장이 만들어준 모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주방장은 자신이 만든 음식을 있는 그대로 음미하는 조지아에게 감사를 전한다. 디디에와 조지아는 금새 친구가 되어 함께 장을 보러 간다. 식재료를 살펴보던 디디에가 조지아에게 속삭인다. ‘인생의 비밀은 버터’(The Secret of life is Butter)라고. 세계 최고 주방장이 하는 말이니 믿어도 된다.
인생의 비밀이 버터라니 무슨 황당한 소리냐고 따진다면 여기 또 다른 예시가 있다. 노라 애프론 감독의 영화 <줄리&줄리아>를 보시라. 참고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착한 남편과 평범하게 살던 줄리는 어느 날 남편의 제안으로 요리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다. 줄리는 전설의 프랑스 주방장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을 보며 1년 동안 524개의 레시피를 도전해 보기로 결심한다.
500개가 넘는 요리를 365일 안에 만들다보면 온갖 일이 생기기 마련. 하지만 줄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레시피대로 모든 요리를 완성하고 블로거로도 유명해지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줄리는 줄리아의 부엌을 재현한 박물관에 방문한다. 벽에 걸린 사진 속 줄리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줄리가 선반 위에 무엇을 올려두고 떠났는지 이쯤 되면 말하지 않아도 짐작 할 것이다. 524가지의 음식을 만들며 줄리는 깨달았던 것이다. 인생의 비밀은 버터였음을.
버터는 위대한 식재료이자 역사가 오래된 식품이다. 인류는 염소, 양, 소 등의 가축을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젖으로 버터를 만들어 왔다. 우유 속 지방을 모아 고체로 가공한 버터는 지방이 80% 이상 들어 있다. 버터는 죽은 빵도 살려내고(발뮤다 토스터기도 나쁜 건 아니지만), 맛없는 볶음밥도 살려낸다. 집에서 음식을 조리하다 망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버터부터 넣어보라. 특히 빵을 반죽할 때 차가운 버터만 있다면 만사 오케이다. 버터는 다른 재료의 배경처럼 깔리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아우라를 풍부하게 뿜어낸다. 스테이크, 스프, 각종 소스, 커리, 케이크, 쿠키, 파스타 등 우리가 사랑하는 수많은 음식에 버터가 스르륵 녹아 있다(당신이 한식파라면 죄송하다).
1981년 해태에서 만든 버터링은 모양 자체만으로 사랑스러움을 퐁퐁 풍긴다. 짤주머니로 짜내 막 구워놓은 느낌이 난다. 종이 상자를 뜯으면 봉지에 쌓인 플라스틱 통이 나온다. 봉지를 벗겨내면 플라스틱 통 안에 과자가 3줄로 늘어져 4개씩 쌓여있다. 버터링이 부서지기 쉬운 과자라 완충재 역할을 하기 위해 플라스틱을 사용했겠지. 우선 버터 향을 맡고, 그 다음 조심스럽게 쿠키 하나를 꺼내 입 안으로 가져간다. 부드럽게 부서지는 버터링의 맛. 예전보다는 버터 풍미가 덜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나이 탓이겠죠.
슈퍼에서 파는 가격은 1300원이다. 버터링 한 개에 108원 정도. 그래, 조금 비싸긴 하다. 하지만 이건 일반 과자가 아니다. 가공버터가 무려 3.5% 함유된 버터 쿠키다. 가공버터는 진짜버터가 아니라고 너무 날을 세우지는 말자. 진짜 버터를 넣으면 가격은 훨씬 비싸진다. 버터링은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과자다. 첫 번째는 새우깡. 10번의 기회가 있다면 6번은 새우깡 4번은 버터링을 선택할 거다. 버터링을 먹을 땐 칼로리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버터링 과자 한 통의 칼로리가 밥 두 공기 분량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부디 잊어주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