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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함께 늙어가는 사이

by 유자와 모과
울산역.jpg


울산에 다녀왔다.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관계로 따지면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되었다.

작은 할아버지 둘째 아들의 장녀 결혼이었다.

작은 할아버지 손주 중에서는 첫 결혼이었다.


나는 큰할아버지 첫째 아들의 장녀다.

작은 할아버지 손주의 첫 결혼이니 큰할아버지 손주의 장녀로써 참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울산에 소풍 다녀온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남편은 해맑게 따라나섰다.


지제 역에서 울산까지 기차표가 4만원이다.

지제역 길가에 차를 주차한 후 기차를 탔다.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다. 길가에 주차된 차들이 끝도 없었다(주차장 증축이 필요하다).

SRT는 뭔가 다를 줄 알았으나 KTX와 똑같았다.

KTX는 잡지라도 있지.


결혼식장은 울산역에서 택시로 30분을 가야 한다.

T맵을 찍어보니 택시비는 3만원이 나온다.

기차 안에서 쏘카 앱을 다운받았다.

운전면허증을 등록해야 하는데 모바일 면허증은 연동되지 않는다.

이런.

내 핸드폰으로 남편 모바일 면허증 사진을 찍은 후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캐스퍼를 예약했다.

4시간 사용에 기름값까지 2만 7천원이 들었다.

태화강을 따라 드라이브 하는 길이 좋았다.


결혼식장에 도착해 예식을 지켜보았다.

강릉 여자가 울산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명절 때마다 작은 댁 식구들이 큰댁으로 인사를 왔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엄마 옆에 앉아 있던 아이였다.

마치 정물처럼.

그 아이가 저렇게 컸구나.


이 결혼식을 보려고 힘들게 왔다.

차비만 20만원 들었다.

오는 데만 4시간이 걸렸다.

부모님 입장부터 신부신랑 퇴장까지 꼼꼼히 봤다.

내 결혼식보다 더 집중했다.


친척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예상대로 친척이 많이 오지 못했다.

강릉에서 울산까지 다섯 시간을 와야 하니 쉽지 않겠지.

머리가 하얗게 세어가는 친척들을 보며 놀랐다.

언제 저렇게 연세가 드셨지?

그들도 나를 보며 똑같이 생각했을 거다.

언제 쟤가 어른이 됐지?


학생이던 시절, 외모가 훤칠한 친척들이 많았다.

어린 눈에도 그게 보였다.

아름답고 멋진 어른들을 보며 마음이 설랬다.

그때 그분들 나이가 지금 내 나이와 비슷했다.


예전엔 나는 아이 그들은 어른이었다.

명확한 구분이 있었다.

20년쯤 지나니 함께 늙어가는 사이가 되었다.

친밀한 마음이 커진다.


다시 쏘카를 타고 울산역에 도착한 후 반납하고 기차를 타고 지제역에 도착해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토요일 하루가 다 갔다.

먼 친척들을 만나 반가웠다.

모두 건강하시길.

좋은 일로 다시 만나길.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감각은 우리 안에 있지 않다.

그 감각은 밖에서부터, 자라나는 아이들, 떠나가는 이웃들, 늙어 가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로부터 온다.

<밖의 삶> 아니 에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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