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와 비자

by 유자와 모과

매해 12월 31일 밤 9시가 되면, 반대편 나라 뉴질랜드에서는 해피 뉴 이어를 외치며 폭죽을 터뜨린다.

밤 11시가 되면 호주에서 새해맞이 환호성이 들려온다.

밤 12시가 되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폭죽을 터뜨리고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8시에 일어나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그제야 해피 뉴 이어를 외치는 중이다.

이게 다 시차 때문이다.


전 세계 시간 기준은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자오선을 기준으로 한다.

이를 GMT(Greenwich Mean Time)라 하는데 그리니치 평균시간, 즉 세계 표준 시간을 뜻한다.

자오선은 지구의 남극점과 북극점을 이어 그은 상상의 선으로, 적도와 위도가 수직으로 교차된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나라는 GMT + 9 라고 표시하는데 이는 우리가 영국보다 9시간 빠르다는 뜻이다.

뉴욕은 GMT -5이다.

뉴욕은 영국보다 5시간 느리고 우리나라는 뉴욕보다 14시간이 빠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한 나라여도 도시마다 시간대가 다른 곳이 있다. 넓은 땅을 가진 미국은 6개의 시간대가 있다.


크루즈는 내가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배만 타고 있으면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주기에 시차가 바뀌었는지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기항지에서 내려 관광을 하다 제시간에 다시 승선하려면 시차가 바뀔 때마다 시계를 정확히 맞춰 주어야 한다.

크루즈 일정 중 시차가 변경되는 경우 저녁마다 카드가 객실로 배달된다.

‘자기 전에 2시간 돌려놓으세요.’ ‘자기 전에 2시간 빨리 맞춰 놓으세요.’

자정이 되면 선내의 모든 시간대가 바뀌고 다음날 미팅시간, 정박시간, 출항시간 모두 해당 기항지의 시간대가 된다.

다행히 대한민국과 일본은 시간대가 같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한반도 통치를 위해 시간대를 통일해 버렸기 때문이다.

일본 여행에서는 시차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크루즈 여행 시 비자도 점검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나라와 비자 협정이 체결되어 있다.

미국이나 중국 등 일부 국가만 필요하다.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영사서비스/비자 항목에 들어가면 어느 나라와 무비자 협정이 맺어져 있는지 혹은 비자가 필요한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크루즈 일정에 따라 비자 종류가 단수, 복수 등으로 달라질 수 있다.

여행 중 해당 일정에 유효한 비자가 없으면 아예 탑승이 거부될 수 있으니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홍콩에서 지하철을 타고 심천을 방문한 적이 있다.

홍콩과 중국 본토 심천(션전)은 지리적으로 붙어있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1시간 이내로 도착한다.

그래도 비자는 필요하다.

심천은 특수지역이라 사전에 중국비자를 신청하지 않고도 현지에 도착한 즉시 비자를 신청하고 발급받을 수 있다.

이를 도착비자라 한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역사에 있는 비자센터에서 사진을 찍고 신청서만 작성하면 끝이다.

도착비자는 심천 내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우리는 홍콩 여행 후 베이징으로 넘어갈 예정이었기에 미리 단수비자를 신청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심천에 도착했다.

심사대에서 여권과 비자를 내밀었고 무사히 통과했다.


다음은 모과 차례.

입국 심사 직원이 여권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너무 쉽게 펼쳐진다고 시비를 걸었다.

아니 그걸 저희보고 어쩌라고요.

여권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더니 한 곳을 가리키며 여기에 찍힌 도장은 왜 이렇게 희미하게 찍혀 있냐고 묻기도 했다.

아니 그걸 저희가 어떻게 아냐고요.


직원은 모과에게 어설픈 영어로 물어보았고, 모과는 직원에게 어설픈 영어로 공손히 대답했다.

직원은 아무래도 모과 여권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는 다른 직원을 호출하며 우리에게 잠시 비켜서라 한 후 줄 서 있던 관광객들의 입국 심사를 진행했다.

다른 직원이 와서 모과 여권을 한 장 한 장 넘겨보기 시작했다.

동료 직원들과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며 한참동안 여권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최대한 착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이러다 억울하게 누명이 씌워져 공안에게 끌려가는 건 아닐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직원은 모과에게 여권에 대해 물어보고, 여권을 넘겨보고, 다시 여권에 대해 물어보았다.

동료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니 더 답답했다.

설마 잡담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30분 정도 흘렀을까.

직원은 모과를 통과시키지 않을 결정적 증거?를 찾을 수 없었는지 마지못해 놓아주었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그때 왜 붙잡혀 있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혹시 뇌물을 달라는 뜻이었을까?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여권이 가짜로 보였나? 모과를 국제 스파이로 의심했나?

비자가 있어도 입국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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