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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Apr 01. 2024

영감은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 어떡하면 좋아. 나 좀 살려줘.”

2020년 3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에 확산되던 시기였습니다. 

도서관이 전국적으로 문을 닫은 지 한 달이 되어가자 답답해졌습니다. 

집에 있던 책과 각종 사용설명서를 남김없이 읽었습니다. 

책은 도서관에서만 빌려 읽겠다는 다짐을 깨고 새 책을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친구네 집에서도 책을 빌렸습니다. 

읽은 책을 한 번 더 읽었지만 도서관은 여전히 닫혀 있었습니다. 

전자책을 읽으려고도 시도해 봤습니다. 

화면 위에 펼쳐진 글자는 예나 지금이나 도무지 적응이 안 되더군요. 

읽을 책이 없다며 한숨 쉬고 우울해 하던 저를 지켜보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도서관이 언제 문 열지 모르니까 기다리는 동안만이라도 집중해서 글을 써보는 건 어때?’


 그래서 썼습니다. 

독서가 글쓰기보다 즐겁고 편하니 쓰기보다는 읽기를 선택할 때가 많았는데요. 

읽을 책이 없으니 쓰게 되더군요. 30일 동안 매일 글을 썼습니다. 

완성된 글을 모아 출판사 네 곳에 보냈습니다. 퇴고는 두 번 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초고를 완성할 무렵 도서관 문이 다시 열렸기에 책을 빌리러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큰 기대 없이 원고를 메일로 보낸 후 책을 빌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출판사에서 계약을 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뭐야? 출판이 이렇게 쉬운 거였어? 보이스 피싱인가? 

출판사 대표님과 통화를 하며 얼떨떨했습니다. 


언젠가는 작가가 되고 싶었고 될 것이라 확신했지만 급작스럽게 책을 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인생 경험을 좀 더 한 후에, 지식을 좀 더 쌓은 후에, 참신한 글감을 좀 더 모은 후에, 마음의 여유가 좀 더 생긴 후에 본격적으로 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서관이 문을 닫지 않았더라면 저는 꾸준히 쓰지 않았을 겁니다. 

쓰는 것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뤘을 것입니다. 


책을 출판하며 깨달았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때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우선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쓰는 게 먼저라는 걸요. 

투고한 원고가 거절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나중에 해도 됩니다. 

어차피 거절은 수도 없이 당합니다. 

꾸준히 글을 쓰는 게 중요합니다. 

창조성은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지만 그것은 영감이나 실력보다는 매일의 실천으로 발전하고 전진합니다.


 창작을 하다보면 순간순간 마음이 흔들립니다. 

내 형편에 예술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습니다. 

작업할수록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고 싶습니다. 

허접하고 시시한 작품이라도 완성이 중요합니다. 

마음속으로만 구상한 최고의 작품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처음에는 즐거움으로 시작했을지라도 첫발을 떼었다면 그 후부터는 작품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만두고 싶어도 마무리를 지어야 합니다. 

작품이 완성되면 사람들이 저게 뭐냐고 수군거릴지도 모릅니다. 

작품성이 없다고 떠들어댈지도 모릅니다. 


그러라고 하세요. 

타인의 평가에 속상해하거나 나에겐 재능이 없다며 절망할 시간에 다른 작품을 시작하는 게 낫습니다. 

작은 작품이라도 완성하면 성취감이 듭니다. 

해냈다는 자신감이 다음 작품에 도전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 줍니다.


 우리는 예술가가 영감을 받아 창작하는 모습을 영화나 소설을 통해 지켜봅니다. 

영감은 영어로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입니다. 

안으로(in)와 불어넣다(inspire)가 만나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고대 그리스인은 영감을 신이 숨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파블로 네루다가 쓴 시구처럼 놀라운 착상이 머릿속에 쏙 들어와 그저 두 손은 그것을 받아 적거나 만들어 내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영감이 번개처럼 찾아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창작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라는 책에서 작곡가 에런 코플런드는 고백합니다. 

작곡을 할 때 영감이 오기를 기다리기보다 매일 책상머리에 앉아 어찌되었건 음악을 써낸다고요. 

오선지가 술술 채워지는 날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날도 있지요. 

어떤 우여곡절이 있어도 곡을 씁니다. 

하늘에서 영감이 전혀 내려오지 않는 날에도 예술가는 의자에 앉습니다. 

오늘 기분이 나쁘건 좋건, 몸이 아프건 아프지 않건, 바쁘건 바쁘지 않던 간에 작업을 시작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조각을 하는 사람은 조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영감이 반짝 쏟아질 때만 창조 작업을 한다면 작품은 평생 완성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영감은 오히려 창작을 하는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처음에는 미미하여 눈에 띄지 않습니다. 

너무 평범해 하찮아 보이기도 합니다. 


창작물을 손에 쥐고 조물락 조물락 만지다 보면 독창성이 생겨납니다. 

아주 작은 독창성이지만 그것은 나만의 것입니다. 

창조활동을 하다보면 몰두하는 과정 속에서 뜻밖의 창조성이 발현됩니다. 과거에 쓴 제 글을 보며 놀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참신한 문장을 썼다고? 대체 어떻게 된 셈이지?’ 

남편도 몇 년 전 그림을 보며 생각합니다. 

‘이건 다시 그리라고 하면 못 그릴 것 같아. 정말 내가 그린 걸까?’ 


 창작을 하는 시간은 마법의 시간입니다. 

끝날 때까지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거든요. 

신비한 마법에 빠지고 싶다면 마법사를 기다리지 말고 직접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세요. 

신의 숨결을 기다리지만 말고 우선 시작하세요. 

영감을 맞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하세요. 

마당에 비질을 하세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세요. 

차를 끓이고 부지런히 할 일을 하다 보면 영감이 귀한 손님처럼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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