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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Apr 22. 2024

쓸모없는 자료는 없다

30대 초반까지는 책을 읽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수첩에 필사를 했습니다. 

지금은 한글 파일에 저장합니다. 

특별히 간직하고 싶은 문장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100권의 책을 읽는다고 하면 50권 정도 한 두 문장씩 기록합니다. 

8년 동안 한글 파일에 수집한 문장을 확인하니 400쪽 분량입니다. 

한번 읽은 책은 다시 읽기 쉽지 않고 금방 잊어버립니다. 

최소한의 문장이라도 간직하고 싶어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모아두었던 문장을 읽으며 즐거워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작가가 되고 나니 문장을 수집해 놓은 자료가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작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다른 작가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면 문장 수집 파일에서 ‘창작’ 단어를 찾아봅니다. 

이 단어가 포함된 문장이 7개 나오네요. 

 중 조지 오웰이 쓴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라는 책에서 가져와 봅니다. 

‘작가는 싫어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믿지 않는 것을 믿는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작가에게 그런 일을 강요한다면 창작능력이 고갈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 역시 싫어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곤란한 상황이라면 침묵을 선택하겠지요. 

언제 이 책을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책을 읽었다는 사실조차 까먹었으니까요. 

창작을 주제로 책을 쓸 거라고는 상상한 적도 없었지만 자료가 축적되어 있으니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창작 재료를 모으는 건 창고에 식량을 차곡차곡 보관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매년 풍년을 바라며 농사를 짓습니다. 

한편으로는 흉년을 위한 대비도 해야 합니다. 

모종과 씨앗을 보관하고 비상식량을 쌓아야 합니다.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면 꾸준히 자료를 모아보세요. 

음반을 모아도 좋고 빈티지 용품도 좋습니다. 

단추도 좋고 돌맹이도 좋습니다. 

새소리를 녹음하고 신문과 잡지 기사를 스크랩하세요. 

책을 읽거나 영화를 감상할 때마다 짧게 독후감을 써 보세요. 

미술관과 음악회를 다녀온 후 팜플렛을 모아보세요. 

작품을 만들려면 우선 땅을 평평히 다져 기초를 세워야 합니다. 

어느 정도 집의 형태를 갖추었다면 모아놓은 자료를 살펴보세요. 

내가 수집한 자료로 침실을 꾸미거나 소파를 놓을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찬장 안의 머그잔으로 쓸 수 있습니다.  


저는 사진을 찍거나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행을 가도 사진을 남기지 않습니다. 

남편도 저와 다니며 점차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뒤로 해외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지 않은 걸 아쉬워합니다. 

언젠가 그림을 그리게 될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기에 귀한 자료를 모을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지요. 

드로잉 연습을 할 때 가지고 있는 사진이 적으니 그릴 대상이 한정됩니다. 

인터넷으로 이미지를 검색할 수도 있지만 직접 찍은 사진보다는 애정이 덜 갑니다. 

그 후 저희는 여행을 가거나 특별한 풍경을 보면 몇 장이라도 사진을 찍으려 노력합니다. 

좋은 피사체를 모아갑니다. 


 자료를 모으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수첩에 영수증을 붙이고 간단한 여행 기록이라도 해 볼까 생각했을 땐 이미 스무 군데 넘는 나라를 여행한 후였습니다. 

여행 수첩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이제 와 시작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더군요.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내고 이제부터 시작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였던 수첩이 두 개 세 개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서랍 하나가 여행 수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언젠가 여행 에세이를 쓸 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줄 거라 생각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창작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듯 자료 수집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때도 없습니다. 

나만의 아이디어 창고를 만들고 자료를 채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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