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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계절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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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Aug 20. 2024

4월


* 목련  


204동 앞에 서 있던 백목련 한 그루가 꽃을 피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얀 촛대처럼 도도했는데 그새 잎이 활짝 벌어졌다. 

해를 갈망하는 꽃의 마음이 느껴진다. 목련은 해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이 결국 그 목을 똑 부러뜨리겠지.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새벽에 보니 잎을 닫은 목련이 알전구처럼 환하다. 맑은 목련을 보려고 창가를 서성인다. 

목련의 아름다움은 잔혹할 만큼 짧다. 걸음을 멈추고 바라봐야 한다.         

 


*식목일 


4월은 집에서 키우는 식물 이삿날이다. 올해 화분을 옮겨야 하는 아이들은 13개. 겨울에도 실내에서 잘 자라주었다. 

화분과 흙을 주문한다. 천리향, 겐차 야자, 카랑코에, 골든 레몬 타임도 새식구로 데려온다. 

배양토와 마사토를 섞고 화분 거름망을 자르고 신문지를 거실 바닥에 넓게 깐다. 

식물 뿌리에 있는 흙을 잘 털어 새 집으로 옮겨준다. 비실비실해 보이는 아이에게는 영양제를 한 방 놓아준다. 겨우내 비어 있던 베란다가 가득 찼다. 

식목일에 나무 묘목을 심기는 어렵지만 식물을 심을 수는 있다. 

생명 있는 존재가 뿜어내는 아우라가 강렬하다. 내 마음에도 새 잎 하나 나왔으면.        


  

* 벚꽃  


마음이 급하다. 며칠 만에 벚꽃이 활짝 피어 버렸다. 

벚꽃은 개화 후 3일이면 만개한다. 1년에 딱 한번, 정신 차리지 않으면 놓친다. 비 오면 끝이다. 

도서관, 치과, 헬스장을 오가며 보고 다시 본다. 풍성한 꽃다발 나무.

 가로수에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주민들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벚꽃도 자기가 예쁘다는 걸 안다. 시선을 받을수록 화려해진다. 

벚꽃처럼 아름다운 아이들이 벚꽃나무 아래에서 씽씽이를 탄다. 

벚꽃 나들이를 핑계로 사람들이 모이고 헤어진다. 벚꽃이 만들어내는 고운 풍경. 꽃비가 날린다.


          

* 수수꽃다리  


길을 걷는데 꽃향기가 스쳐 지나간다. 이 향기는, 설마? 수수꽃다리가 벌써 피었다고? 

그렇다. 연보라색 라일락이 조용히 피어났다. 

온 세상이 꽃 천지다. 조팝나무에 달린 하얀 꽃도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누가 누가 더 향기로운가. 

봄꽃에게는 내일이 없다. 오늘이 가장 아름답고 화사하다. 봄을 위한 시간을 남겨두어야 한다. 

신이 주신 자연의 선물을 충분히 누려야 한다.           



* 두릅  


두릅의 계절이다. 부모님은 두릅을 좋아하신다.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쌉쌀한 맛이 일품이라고. 비싸다는 이유로 잘 사지는 않는다. 

그 비싼 걸 어떻게 먹니. 엄마는 말한다. 두릅보다 비싼 건강보조식품은 잘만 구매하면서. 

나는 두릅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김새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장을 보다 참두릅이 보이면 부모님 생각이 난다. 한달 후면 드시고 싶어도 없을 텐데. 

장바구니에는 어쩔 수 없이 두릅이 담기고, 두릅을 건네받으며 부모님은 꽃처럼 웃으신다.       


    

* 황사  


거울을 보니 얼굴이 울긋불긋하다. 가을도 아닌데 볼에 왜 단풍이 피었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며칠 동안 황사가 몰려왔다. 먼지 때문에 산 능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평소처럼 대충 세안을 했더니 피부에 노폐물이 남아 두드러기를 일으킨 거였다. 

황사는 아름다운 봄날을 괴롭히는 가장 강력한 적이다. 

무찌르려 해도 중국에서 날아오는 먼지를 막을 방법이 없다. 

마스크를 쓰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니 안타깝다. 전국적으로 황사 주의보가 내려졌다. 

황사가 피부를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산책하는 발걸음까지는 막지 못할 거다.          



* 구름  


하늘은 가을하늘이라지만 봄 하늘도 그에 못지않게 좋다. 

서둘러 초록 옷으로 바꿔 입은 나무를 보려 고개를 뒤로 젖히다보면 하늘도 보게 된다. 

봄 하늘에는 구름이 많다. 예전에는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이 좋았다. 

요즘은 파란 하늘이 조금 심심해 보인다. 아기염소가 나란히 풀을 뜯을 만한 구름이 도통 보이질 않는다. 

이 세상에는 구름을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구름감상협회 회원으로 활동한다. 

이 협회는 2005년에 개빈 프레터피니라는 영국인이 설립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추종자들에게 맞서기 위해서라고 한다. 

120개국에서 5만 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되어 있다. 협회 선언문 중 일부를 소개한다. 

'우리는 ’파란하늘주의‘를 만날 때마다 맞서 싸울 것을 맹세한다. 매일 구름 하나 없는 단조로운 하늘만 올려 봐야 한다면 인생은 너무도 지루해질 것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도 좋지만 여러 모양을 상상할 수 있는 구름 가득한 하늘도 좋다. 

하늘과 구름은 사이좋은 부부 같다. 오늘은 구름감상협회가 분노할 만한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다.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 주길 바란다.           



* 철쭉  


벚꽃 지니 철쭉이 거리를 점령한다. 팝콘 터지듯 하루가 다르게 피어나는 꽃잎들. 

얼핏 봐서는 영산홍인지 철쭉인지 알 수 없다. 매화와 벚꽃 구별보다 난이도가 높다. 

영산홍과 철쭉은 같은 진달래과지만 진달래와 달리 꽃과 잎이 함께 달려 있다. 

보라색, 자주색, 흰색, 빨간색 꽃이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향기 대신 색감으로 승부하는 아이들. 

잔치가 열린 듯 왁자지껄하게 피어있는 철쭉이 부담스러워 피하려 해도 피할 방법이 없다.       


    

* 수목원  


나무가 연두색 잎으로 뒤덮을 무렵 수목원 나들이를 시작한다. 

오산 물향기 수목원과 대부도 바다향기 수목원이 적당한 거리에 있다. 

황학산 수목원, 광릉 수목원, 아침고요 수목원으로 차츰 반경을 넓혀간다. 

4월의 수목원은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들과 아직 피지 않은 꽃들이 섞여 있다. 걷기에 딱 좋은 햇살이 비춘다.

 6월만 되도 뜨거운 햇살에 지치기 마련이라 4월과 5월에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 

일월 수목원과 영흥수목원은 비교적 가까이 있어 언제든 갈 수 있다. 

수목원은 푸르른 자연 속을 걷고 뛰고 쉴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다. 

김밥 한 줄과 입장료 몇 천원만 있다면 근사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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