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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알 수 없는 이별 3

내 삶에서 알 수 없는 이별 경험은 3번이다.

잠시 고등학교 시절로 이동하겠다. 내 삶에서 알 수 없는 이별 경험은 3번이다. 이 경험들을 통해 나는 더욱 단단해지고 변화에 목말라 집념하게 되었다. 

#알 수 없는 이별()3 – 신입생(or 묵묵히 행해진 변화)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나의 소문을 듣고 호기심에 먼저 다가온 친구가 있었다. 그는 나와 가정환경이 비슷해서 하루 만에 빨리 친해졌다. 하굣길에 그 친구가 내일 등교를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당시에 아침마다 신문 배달을 하고 있었기에 좀 늦을 수도 있다고 말하니, 괜찮다며 내일 7시 15까지 약속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신문 배달을 빠르게 마치고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시간 계산을 해보니 1, 2분 정도 늦을 것 같았기에, 그가 괜찮다고 했지만 잠시도 쉬지 않고 약속 장소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약속 장소에 7시 16분에 도착했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헐떡이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주위를 빠르게 살폈다. 하지만 주변에 교복 입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 20분이 되었다. 초조한 마음이 걱정으로 변해서는, 아직 집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싶은 마음에 그의 집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가 7시 10분쯤 집을 나섰다고 했다. 맥이 빠졌다. 나는 그 친구가 학교로 먼저 간 것이라고 확신했고, 힘 빠진 다리를 힘겹게 끌고 학교로 향했다. 교실에 도착하자 역시나 그는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 딱 16분에 도착했는데… 넌 먼저 가고 없더라.”

내가 건넨 말에도 그는 기분 나쁜 표정만 지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웃으며 다시 물어보았다.

“너 몇 시에 갔어?”

“15분 정각에. 난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이 제일 싫어.”

“그래? 아, 미안. 그럼 내가 매점에서 라면 살게.”

“됐다. 안 먹는다.”

“어? 내일은 늦지 않을게. 매점 가자….”

“됐다.”


종이 울리고 수업이 시작되어 대화가 끊겼다. 쉬는 시간이 되자, 나는 다시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가자. 내가 라면 살게….”

하지만 그는 어제와는 180도 다른 말투와 행동으로 나를 냉정하게 거절했다.

“됐다. 안 먹어. 그리고 더 이상 나에게 말 걸지 마.”

“야, 왜 그래? 약속 한 번 안 지켰다고 그래? 나, 오늘 최선을 다했지만 약속 시간에 좀 늦었어. 정말 미안하다.”

“됐다. 내일부터는 학교에 따로 가자.”

“진짜?”

“그래.”


그는 나를 홀로 세워둔 채 다른 아이들과 매점으로 갔다. 너무 기분 나빴지만 더 이상 따지거나 화낼 수 없었다. 약속을 어긴 건 내 잘못이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그 친구와 나는 고 3학년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졸업 후에도 가끔 시내 남포동에서 그를 만나면 우린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 우연히 그를 만난다면 내가 먼저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상처가 깊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예 반 아이들 전체가 나에게 관심을 끊었던 경우도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학원에서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아이들은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곧 실업계 학교로 입학을 했고, 첫 중간고사가 다가왔다.


“저 아이야, 저 아이. 아마 쟤가 1등 할 거야. 고등학교 입학 전에도 학원에서 맨 앞자리에 앉아 엄청 열심히 공부했대.”

시험 기간이 다가오자 반 아이들은 대부분 나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중학교 때부터 공부하는 방법과 습관을 잘 모르겠어서 자신이 없었다. 암기를 해도 머릿속에서 자꾸만 흘러나가고, 수업 중에는 신문 배달로 인해 피곤해서 졸기 일쑤였다. 당연히 성적 관리는 형편없었다.


중간고사 성적 발표 날, 내가 1등을 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반 아이들은 내 성적을 듣고는 크게 실망했다. 나는 반에서 50명 중 26등, 과에서 120명 중 45등이었다. 그 이후, 반 아이들은 나에게 관심을 끊었다.

나의 신조는 ‘과거처럼 살지 말자.’이다. 중고등학교 때의 성적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에게 괴롭힘이나 이용을 당하지 말자는 것이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답게 사는 도리와 뚜렷한 자기표현 노출’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난 미팅 때 작은 실수로 인해 자신감을 상실했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전산부 동기들과 선배들이 “요즘 남호가 너무 조용해졌다.”라고 자주 말할 정도였다. 그걸 인지하자 ‘이대로는 안 된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서 예전을 떠올리며 노력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자신감을 되찾아야 했다.     


고등학교 첫 여름방학이 오기 전, 전산부에서 여름 캠프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 캠프는 내 생애 처음이었다. 나는 정말 친구들과 같이 캠프를 가고 싶었다. 하지만 가슴 한켠에서는 다른 무언가를 갈망했다. 바로 스스로 훈련이 덜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친구, 선후배들과 캠프를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고등학교 시절에 전산부 선후배, 동기들과 여행을 단 한 번도 못 간 것은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왜 그렇게 훈련에 집착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나에게는 그들과 함께 놀러 가는 시간을 이용해 더 많이 훈련하는 게 우선이었다. 여름방학을 통해 모든 것을 걸고 변화를 이루어내야 한다고 믿었다. 목표를 향해 묵묵히 행함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매해 방학마다 가혹한 훈련을 견뎌내며, 나 자신에게 더 높은 목표를 설정했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실로 나는 변화를 이루어냈다. 그 때문에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간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이후로도 함께 갈 수 없었다. 그런 선택은 변화를 택하느냐, 아니면 우정을 고수하느냐의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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