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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겐 May 14. 2024

<제30화> 무조전 지지자 3

파출소 밖으로 나오면 형들이 나를 때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중학교 3년의 긴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드디어 자유인이 되었다. 중학교 생활 내내 사회 선생님과의 꼬이고 꼬인 갈등은 나를 참 힘들게 했다. 이제 나를 통제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했으며, 나도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남은 시간 동안 열성을 다해 훈련하여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다.

‘내 결코 앞으로는 지난 중학생 때의 비참한 일들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기 몇 주 전 주말, 나는 어김없이 훈련을 하기 위해 용두산 공원에 왔다. 이곳은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부산의 명소이다. 그래서 더욱 이곳에서 훈련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층 높이의 가파른 길이 눈에 띄었다. 지대가 높아서 공원 아래의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이기에 훈련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높은 지대로 올라가서 공원 아래의 풍경을 바라보고 선 채, 당시 최고 인기 가수인 심신의 ‘오직 하나뿐인 그대’라는 노래를 용기 내어 큰 목소리로 불렀다. 그날따라 관광객이 많지 않아서 다행히도 그리 떨리지는 않았다.


“그리움 두고서 가지는 마~ 나 홀로 있으면 외로운데~ 그대의 얼굴을 바라다보며~”

그때 저 아래에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3명의 형들이 위를 향해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멀리서 나의 노랫소리를 듣고는 박자에 맞춰 “앗싸~!!”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형들의 반응을 보고는 나의 노래가 긍정적으로 들렸구나 싶어서 좀 더 과감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노래의 안무 동작인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흔들며 더 크게 노래를 한 것이다.

“그대여~!! 그 마음속에 이대로 나를 담아둘 수 없는가!! 그대여~!! 이 아름다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그대~~!!”


나의 노래가 허공에 가득 울려 퍼지자, 그들은 또다시 “와! 멋지다!”라고 외쳤다. 나 또한 더욱 흥분되어서 더 큰 동작으로 춤을 추고, 더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날 즈음, 형들도 내가 있는 위치 가까이까지 오게 되었다. 멀리 있을 때는 과감했던 내 행동들이, 형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쑥스러워졌다. 그래서 형들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아래를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3명의 고등학생 형들이 나를 향해 점점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느낌이 쐐했다. 그 형들은 화난 표정으로 나에게 오라고 손짓했고, 가까이 다가간 나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아얏!”

“야! 너 위에서 우리한테 뭐라고 했어? 죽을래!”


나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나를 쫓아왔고, 나는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더 빨리 뒤로 물러났다. 뒤를 돌아보니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용두산 파출소가 보였다. 형들에게 잡히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무조건 저 파출소로 달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뒤돌아 뛰기 시작했는데, 훈련 덕분인지 나도 모르게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큰소리나 쳐보자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남호다!! 그래! 나는 미쳤다! 어쩔래!! 이 개자식들아!

형들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엄청난 속도록 나를 쫓아 뛰기 시작했다. 나는 큰소리치면서도 너무 떨려서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예전에는 없었던 배짱이나 오기가 생겨나 뿌듯하기도 했다. 나의 용기 있는 시도가 무산되면 안 되니 안간힘을 다해 파출소를 향해 뛰었다.

“살려 주세요! 저 형들이 저를 때리려고 해요!”


나는 파출소 앞에 다다라서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가며 외쳤다. 곧이어 흥분한 형들 중 한 명이 나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왔다. 경찰관 아저씨는 우리 둘을 보고는 순간 당황한 듯했으나 다시금 나가려는 형의 뒷덜미를 붙잡고는 의자에 앉혔다. 그러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경찰 방망이로 그의 허벅지를 세게 내려쳤다.


“야 인마! 왜 어린 동생을 괴롭혀! 네가 깡패야? 어!”

“악! 아저씨! 악! 저 깡패 아니에요. 아악!”

“밖에 서 있는 나머지 두 놈도 들어오라고 해! 어서!!”

그는 꽤 아팠는지 맞은 허벅지를 매만지며 문을 열고는 밖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2명의 형들이 쭈뼛대며 안으로 들어왔다. 경찰관 아저씨는 그 형들도 의자에 앉힌 후 방망이로 그들의 허벅지를 내려쳤다.

“이 자식들! 부모님 속상하시게 이게 뭔 짓이야! 어!”

“아악! 아저씨! 저희 말 좀 들어보세요. 저 자식이 먼저 우릴 보고 놀렸어요! 우린 잘못한 게 없다고요!”

“뭐? 꼬마야, 이 말이 진짜야? 네가 먼저 이 형들을 놀린 거야?”


경찰관 아저씨는 믿을 수 없단 표정과 말투로 내게 물었다. 그러자 형들은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아까의 상황을 마구 고자질하기 시작했다.

“저 녀석이 먼저 가요를 큰 소리로 부르면서 우리에게 삿대질했어요! 그대여! 그대여! 하며 놀렸다고요.”

“뭐? 그게 정말이야? 네가 먼저 형들에게 삿대질하고 그랬어?”

“……네. 하지만 놀린 건 아니에요. 삿대질한 것도 아니고요. 그건 춤을 춘 거예요.”

“춤? 아니, 대체 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는데?”

“사실은… 제가 좀… 사연이 있어서요.”

‘사연’이라는 내 말에 모든 경찰 아저씨들과 3명의 고등학생 형들은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 성격이 소심하고 내성적입니다. 그래서 성격을 바꾸고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 공원에서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어요. 그런데 형들이 ‘좋다!’, ‘멋지다!’라고 반응해 주니 너무 기뻐서 더 과장되게 행동하게 된 거예요. 놀리려고 그런 건 절대 아니었어요. 믿어주세요.”

순간 파출소 안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잠시 후, 경찰 아저씨가 나와 형들에게 오해가 풀렸으니 그만 가봐도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밖에 나가서 이 학생에게 해코지하면 너희들 모두 폭행죄로 체포할 거라고 으름장도 덧붙여 주었다.

파출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형들 중 한 명이 나를 향해 다짜고짜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그 손을 잡자 형은 잡은 손을 흔들어 악수하더니 본인들의 소개를 했다.


“우린 18살이야. ○○공고 다녀. 넌 몇 살이고 어느 고등학교로 입학하냐?”

“저는 16살이고, 경남상고에 입학해요.”

“그렇구나. 근데 아까 너 진짜 용기 있었어. 그때는 네 사정을 몰라서 우리를 놀린다고만 생각했어. 미안하다. 앞으로도 열심히 훈련해서 소심한 성격에서 탈피하길 바라. 그리고 남포동에서 우연히 만나면 아는 척하자.”

“네. 고마워요, 형.”

파출소 밖으로 나오면 형들이 나를 때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나를 칭찬하며 응원해 주었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몸이 게을러질 때에도 이 형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훈련하곤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훈련하기 위해 남포동에 갔다가 진짜로 그 형들을 만나게 되었다.

“야, 동생~ 훈련은 잘되어가니?”

“앗! 형, 안녕하세요. 그때 형들의 응원에 힘입어 열심히 훈련하고 있어요.”

“그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이지. 열심히 해라.”     


33년이 지난 2024년 현재, 나는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형들이 경찰 아저씨에게 억울하게 허벅지를 맞던 모습, 모르는 동생인데도 나를 칭찬하고 응원해 주던 모습은 인생을 살면서 크나큰 용기가 되어주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은 성인이 되어 여러 가지 책임을 짊어지고 있지만, 그때의 기억은 나에게 끊임없는 동기부여가 되어준다. 어떠한 어려움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를 가지고자 노력하며, 그 형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 형들에게는 나에게 큰 보탬이 되어준 덕분에 감사함을 늘 느낀다. 이제는 그들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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