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니 다시 달릴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아침에 비 소식이 있었다. 어제부터 구름 낀 날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평소 같음 일기예보만 믿고 나서지 않았을 이른 아침에 슬쩍 창 밖을 내다본 뒤 비가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아침 산책길에 올랐다. 전보다 날이 더 따뜻해진 덕분에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요 며칠 미라클 모닝을 실천할 때면 어김없이 아침 산책을 나서고 있다. 걸으면서 어제 하루 축 처진 마음을 다시 긍정해 주고, 일으켜 세워준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해낼 수 있는 사람임을 이야기해 주며 나를 다독여 주는 시간을 갖는다.
걷다 보면 달리는 사람들이 곁을 가볍게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걷는 시간이 하루 이틀 반복되다 보니 마음 한편에 '나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차 오름을 느낀다. 과거의 난 누구 못지않게 잘 달리는 사람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듯, 한창 때는 한참을 뛰어도 숨이 차는 일이 없었다. 대학생 시절 에는 과 대표로 나설 만큼 잘 뛰었는데. 슬픈 건 이 모든 경험은 과거형이라는 사실이다. 어느새 조금만 빠르게 걸어도 정강이가 쨍-하고 아프고, 오늘따라 몸이 가벼운 듯하여 신나게 걷고 돌아오면 무릎이 욱신 거리는 몸이 되었다. 그러니 달리는 건 과분한 생각일 뿐이다.
그랬는데, 오늘따라 자꾸 마음이 달리고 싶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딱, 저기까지만 달려볼까?', '걷는 속도보다 조금만 더 빠르게 속도를 내보자'라는 마음으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온몸의 하중을 견디며 나의 발은 한 발짝 두 발짝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어라? 오늘은 좀 괜찮은 것 같은데?', '조금만 더 달려볼까?' 생각이 이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계획했던 구간보다 조금 더, 조금씩 더 멀리까지 달려 나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쾌감이었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달리는 이 기분! 상쾌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마음의 바람을 몸이 받아줬다. 몸의 움직임을 다시 마음이 느껴줬다. 마음이 '해볼까?'라고 신호를 보내자 몸이 '그래!'라고 받아주는 상호 작용. 이 느낌을 잘 간직하기로 했다.
퇴사 후의 참 암울한 시기를 거쳐, 현실을 인정하고 나의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지난한 시간을 보내는 요즘. 나에게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하는 감각은 몸과 마음의 상호 작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은 세상의 속도에 따라가기 바빴던 만큼 둘은 함께이지만 따로였다. 그래서 아팠고, 지쳤던 것 같다. 그러나 둘이 보조를 맞추니 이보다 더 가벼울 수 없다. 이보다 더 상쾌할 수 없다.
결핍은 실행하게 만드는 좋은 동기가 된다고 한다. 동의하면서도 지향하지는 않는다. 자칫 균형을 깨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균형이 깨어진 상태에서 결핍을 채우기 위해 달려 나가면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몸이든 마음이든 둘 중 하나는 견디지 못할 것이니까.
조급함이 느껴진다면 걷기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 책상머리에 앉아 집중하는 시간도 체력이 부족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믿든 안 믿든, 불안한 마음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삶은 원하는 바를 끌어당기지 못한다고들 하지 않던가. 긍정의 힘은 움직임에서 나오는 것이다. 삶의 방향이 모호한 상태라면 그래서 붕 떠있는 듯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적어도 움직이는 것으로 하루를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당신이 걷는 동안, 뛰는 동안, 당신의 마음은 원하는 방향으로 당신을 안내할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