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한 봄 나들이

by 알레

요즘 서울의 벚꽃은 절정을 이루고 있다. 곳곳의 명소들은 이미 사람들이 북적댈 시기. 매년 봄이면 벚꽃 명소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온라인을 장식한다. 볼 때마다 '와~' 하지만 이내 '굳이 명소에 가야 하나' 생각이 바뀐다. 오래전 일이지만 여의도 윤중로에 갔다가 여긴 벚꽃 군락지인지 아니면 인간 군락지인지 분간이 안됬던 경험 이후 다시는 명소에 가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동네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면 끝날 이야기를 이리도 장황하게 늘어놓아 본다


우리는 오늘도 동네에서 부지런히 눈호강 중이다. 이번엔 평소와 다른 곳으로 향하니 그 나름 새롭다. 동네 주민들과 차를 타고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바글바글하다. 이곳은 우리 동네 벚꽃 스폿이다. 공원 한쪽으론 벚꽃 터널이 있고 안쪽엔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광장과 놀이터가 있다. 다른 한편엔 둘레길도 있어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모두가 함께 머무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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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봄나들이 특수를 놓칠 수 없는 뻥튀기 차는 공원입구에서 문전성시를 이룬다. 우리도 한 봉지 들고 공원을 걸었다. 벚꽃길을 가기 전 발길 가는 데로 걷다가 아이가 머문 곳은 숲 놀이터. 작은 규모이고 별 건 없지만 아이에게는 가지고 놀 것 천지다.


노란 꽃, 분홍꽃을 보며 한참 서있다가 비눗방울총을 들고 걷는다. 올챙이가 한가득인 작은 웅덩이에서 또 한참을 앉아 쫑알거리다 숲 놀이터에 도착. 돌멩이를 줍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도토리도 줍는다. 이번엔 쭈그리고 앉아 잘린 나무 밑동에 흙을 뿌리며 소꿉 장난 하듯 요리를 시작한다. 아내랑 둘이 또 한참을 놀다가 아이가 훌쩍이는 걸 보고 그만 가자고 했지만 역시 듣질 않는다. 아니 들을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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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젤리가 등장할 차례다. 역시 순순히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공원 입구로 내려가는 길 하필 놀이터가 있을게 뭐람. 재빠르게 지나치려 했으나 이미 아이에게 딱 걸렸다! 젤리고 나발이고. 아이는 자지러지고. 하아. 참새를 굳이 방앗간 앞으로 데리고 온 게 실수였다.


또 한 참 머문 뒤 겨우 벚꽃길로 향했다. 한참 만개한 벚꽃은 언제 봐도 예쁘다. 걷다가 사진도 찍고 젤리도 먹으며 자연스럽게 공원을 빠져나왔다. 차에 타자마자 아이는 잠이 들었다.


매 주말 반복되는 일이지만 온 마음을 다해 자지러지는 아이를 상대하고 나면 카운터 펀치 같은 잽 10 연타를 맞은 기분이다. 아이가 잠든 차 안에 앉아 있는 동안 발끝부터 묵직한 피로감이 올라왔다. 점심때 문화센터부터 오후 내내 밖에 있었더니 노곤해졌다.


잠시 쉬었다 부모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무인 상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마침 아이가 좋아하는 슈퍼윙스 장난감이 든 초콜릿이 있길래 하나 샀는데, 하필 이미 가지고 있는 게 나왔다. '어쩌지?' 두 개 더 샀다. '오! 이번엔 없는 거다!' 근데 아이가 찾는 건 아직이다. '또 어쩌지?' '에라 모르겠다. 남은 거 다 사자!' 남아있던 7개를 다 사고 하나씩 뜯었다.


무슨 복권 긁는 기분으로 하나씩 장난감을 확인했는데, 7개 중 네 번째 것에서 드디어 나왔다! '다 모았다!'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 같은 순간의 희열. 마치 당장이라도 드래곤볼의 용신이 소환될 것 같은 웅장한 기쁨이 밀려왔다. '참, 이게 뭐라고 뿌듯하냐.' 비록 18,000원이나 썼지만 두고두고 되새길 추억거리 하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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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센터, 꽃, 돌멩이, 흙, 나무, 올챙이, 놀이터, 할아버지 할머니, 아이스크림 그리고 슈퍼윙스. 오늘은 아이가 좋아하는 순간들로 가득 채워진 하루다. 마흔이 넘어서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나니 아이에게도 평소의 가치를 전해주고 싶었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일지 몰라고 반짝반짝 빛나는 보물 같은 평소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오늘처럼 가족이 함께 웃으며 보내는 날들이 돌아보면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음을 꼭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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