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의 순간을 간직하기

by 알레

아이를 기르다 보면 늘 아름다운 순간만 있을 수 없다. 언젠가 친한 지인이 그런 말을 했다. "아이가 좀 크면 같이 앉아서 책을 펼쳐 읽는 장면이 펼쳐질 줄 알았어요. 개뿔! 그런 건 드라마에서 나오는 거예요." 아들 육아 선배의 허심탄회한 한 마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있었다. 물론 가능은 하겠지. 그러나 대부분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육아를 해보면 안다. 아이는 무질서한 존재다. 악동이라고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빠의 바람대로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 주면 좋겠지만 근데 또 다르게 생각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프로그래밍한 대로 움직이는 로봇이다. 제멋대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사람이기에. 그리고 초강력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아이이기에. 쿨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아니 될 줄 알았다.


쿨하게 받아들인 건 아이가 아니라 내가 쿨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하루에도 몇 번, 끓어올랐다 식기를 반복하는 일상. 이빨 닦이려면 한참 실랑이를 벌여야 하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선 또 한바탕 뒤집어져야만 끝나는 하루. 이게 육아의 리얼리티다.


그러나. 푸념같이 내뱉는 이 모든 순간이 돌아보면 환희의 순간들이었다. 아이의 행동에는 엄마 아빠가 자기를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한다. 셋이 매일 부대끼며 살지만 같은 공간에서도 각자의 시간을 보낼 때도 많다. 그럴 땐 어김없이 아이는 엄마 아빠를 불러대며 놀자고 한다. 해야 할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잠시만’을 반복하다 보니 아이는 아이대로 서운했는지도 모르겠다.


트롯 노래가사 중에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해’라는 게 떠오른다. 엄마 아빠를 먼저 찾을 때 잘해야 하는데. 아이가 성장하는 게 좋기도 하지만 혼자 상상 속에 괜한 서운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언젠가 이 녀석도 싸한 태도를 취할 때가 오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 ‘아빠’를 불러줄 때 더 열심히 놀아줘야겠다.


겪어보니 깨닫는 게 하나 있다. 아이의 사랑은 짧다. 부모가 자녀에게 쏟는 사랑의 지속 시간에 비하면.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 ‘아빠다!’하며 두 팔 벌려 마중 나오는 아들은 한 번 꼭 끌어안고 나면 끝이다. 좀 더 오래 누리고 싶은데 너무 빨리 끝나 아쉽다. 그러나 아이의 사랑은 스타카토처럼 순간이 계속된다.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어쩌면 타고난 밀당의 고수인지도.


육아를 하며 오히려 아이로부터 더 많이 채워짐을 느낀다. 어쩌면 어릴 적 채워지지 않아 자라지 못한 내면아이가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사랑이고 축복이다. 한 생명이 가져다주는 행복이 이렇게 크다는 걸 매일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음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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