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운교(敎)'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오늘 한 작가님과의 만남 중에 우연히 이 단어를 들었다. 물론 표준어는 아니지만 대체로 '운이 좋아 잘 풀리는 인생'을 빗대어 쓰는 표현인 것 같다. 마치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것처럼 '운교'는 운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뜬금없이 운 타령인가 싶을 것 같은데, 30대 이후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돌아본 내 인생은 참 운이 좋았다는 말이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을 정도다.
첫 직장에 입사할 때 회장님을 만나 슈퍼 패스권을 획득하여 한 방에 입사했다. 인사팀을 대 혼란 속에 빠뜨리긴 했지만 인턴부터 시작해 수습사원을 거쳐 정직원이 되어 약 2년 반 동안 무난하게 근무를 하고 퇴사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 함께 입사했던 대학 후배와 나 둘 중에 진즉에 내가 떠나게 될 운명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운명은 뒤 바뀌었고 결국 내가 남았던 것이다.
첫 번째 퇴사 후 별안간 떠난 귀촌생활도 정확히 1년 만에 정리하고 돌아왔는데 1년짜리 집 계약 만기에 맞춰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떠날 수 있었다. 아주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시기가 딱 맞아떨어졌다.
마지막 회사도 회장님 우대권을 통해 입사했다. 뭐, 마지막 회사는 워낙 작은 규모의 회사였기에 다행히 사내에 혼란을 빚은 건 없었다. 마침 귀촌생활을 접고 돌아와 백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운이 좋아 길지 않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간 동일한 사건을 해석할 때마다 '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나는 정석대로는 풀어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오늘 작가님과의 대화를 통해 같은 사건에 대해 이렇게 정 반대의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계획된 우연'이라는 말이 있다. 스탠퍼드대학의 존 크롬볼츠 교수에 의해 정립된 사회학습이론이다. 요컨대 한 사람의 삶에어 일어나는 우연들이 긍정의 결과를 가져와 그 사람의 진로에 연결된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내 삶이 계획에 따라 흘러간 적은 없었다. 모든 게 우연의 반복이었고 긍정의 결과가 연결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정리해 보면 나는 진심으로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하나. 그리고 그 모든 행운에는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게 둘.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것이 셋. 이 세 가지가 나를 러키가이로 살게 만든 주요한 이유였던 것 같다.
어쩌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떤 계획을 세우기 위해 몰두하기보다는 두루뭉술해도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에 긍정적인 태도로 최선을 다하는 게 해답이지 않을까? 사실 운이라는 건 결국 그런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삶의 태도의 결과물이었던 건 아닐까?
오늘 나에게는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내가 관심 있고 시간을 쓰고 있는 많은 것들을 배우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라는 질문에 또다시 정답을 내어야만 할 것 같은 부담을 느꼈다. 그러나 계획된 우연은 정답이 아닌 그때 그때의 해답을 내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목적지가 두루뭉술할지라도 해답을 내는 시간이 지속되다 보면 자연스레 선명해지지 않을까? '운교도'로서 다시 한번 나의 운을 믿어 보자. '운'이 나를 자유케 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