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결국 또 같은 자리에 섰다. 그러나 확실히 달라진 건 이번엔 기필코 이 숙제를 풀고 넘어가리라는 굳은 의지다. 인생은 저마다의 선택에 따라 반드시 풀어야만 하는 숙제를 안겨주는 것 같다. 재밌는 건 숙제를 꼭 풀지 않아도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쭉쭉쭉 내지르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빠르게 다음으로 넘어가며 삶을 영위해 나가는 듯 보인다. 3년 전에 그들을 보면서 한없이 부러울 때가 많았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찡긋!)
이런 느낌으로 희망을 전해줄 때면 '그래! 나도 해보자!' (주먹 불끈) 요런 기분으로 받으며 속도를 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엔진이 멈췄고 좌절의 구간이 시작됐다. 다시 회복한 뒤 또 누군가의 동기부여 메시지에 취해 다시 주먹을 불끈 쥐어보았다. 아, 이번엔 이도 '악' 물고 달려보았다. 전보단 좀 더 나아가긴 했는데 역시 또 엔진이 꺼졌다. 다시 좌절 구간.
이런 시간을 3년간 보내며 깨달은 것이 '숙제를 풀지 않으면 결국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그 지점에 섰다.
최근 4주간 토요일 저녁에 워크숍에 참여했다. 커리어에 대한 워크숍이었는데 마지막날 기억에 남은 내용이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삶의 방향이 뚜렷해지면 삶이 단순해진다는 부분이었다. 밤의 즐거움, 건강하지 않은 음식이 주는 혀의 즐거움, 중요하지 않은 일들로 채워지는 시간의 누수. 우리의 일상은 의외로 이런 것들로 채워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삶의 목적이 분명해지면 행동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강의를 듣고 있는데 다른 때와 다른 기분이 느껴졌다. 순간 직감했다. '이거구나. 내가 풀어야만 하는 숙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삶은 다시 나에게 다 풀어내지 못한 숙제를 마저 해결하라고 내어줬다.
돌아보면 그동안 해결해야 할 내면의 문제들이 많았다. 글을 쓰며,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어떤 부분들은 해결했거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여전히 뾰족한 답을 내지 못한 것이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에 대한 부분이다.
솔직히 나는 여전히 이 부분에 답을 내기가 어렵다. 에니어그램 9번 유형의 특징이라고도 하는데, 본능을 수면아래 감추고 살아가기 때문에 평소에는 딱히 불편한 게 없다. 그러니 더더욱 해결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소리다. 사실 왜 없겠나. 있는데 그걸 너무 잘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잘 모른다는 게 문제다.
아무리 가지고 있는 재능이 여러 가지라고 한들 표적이 무엇인지 모른 상태로는 어떤 재능을 어디로 발사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토요일 마지막 워크숍이 끝나고 대표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라이프코칭을 받고 싶다고 부탁드렸다. 올 해가 가기 전, 이 숙제를 꼭 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몇 마디 나누는데 나도 모르게 또 감정이 올라왔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기 힘든 상태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아마 대표님도 느끼셨는지, 연락을 달라고 하시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요즘 내 인생은 쓴맛인지 단맛인지 도통 감을 잡기 힘든 상태다. 한없이 쓰다가도 또 달콤한이 느껴지곤 한다. 감을 잡기 힘든 상황이라면 쓴맛 보단 단맛을 택하려 한다. 눈앞의 현실은 씁쓸하지만 바라보는 내일은 달콤해도 되니까.
이번엔 정말 인생 숙제에 답을 낼 수 있을까? 제발, 그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