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까?
난 사람들은 모두 어떤 분야 안에서 누구나 인정할 만한 무언가를 내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 각자의 세계관이 있고 창조해내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글, 그림, 콘텐츠, 아이디어, 철학, 기술, 의료 기술 등 무엇이든지 어쩌면 각자의 예술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업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개인의 취미에서도 이런 면은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냥 돈 때문에 하는 일 말고, 진정으로 자신이 자아실현을 하고 싶어 하는 어떤 행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남자 친구와 인정할만한 거장이란 무엇일까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세상에는 눈에 띄는 발자취를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위인, 거장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을 오래오래 기억한다. 최근 내가 생각하는 거장분들은 이런 사람들이다. 스티브 잡스, 봉준호 감독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 박진영 님, 싸이 님... 내 생각에 이들의 공통점이라 함은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흔들리지 않고 확실하게 있다는 것이다.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사람의 세계와 가치관, 능력은 한정적이다. 엄청난 천재가 아닌 이상 늘 새롭게, 무한하게 창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반짝 떠오른 사람들은 그 전작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큰 부담감을 짊어지고 창작을 지속해야 한다. 만약 전작보다 흥행에 실패할 경우에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에이 운이었네. 에이 그냥 반짝 스타잖아.
나도 별 대단한 작품을 내놓아본 적은 없지만 창작을 지속하는 사람으로서, 그 기분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작은 관심에도 들떴다가 그다음 글에서 오지 않는 무관심에 상처를 받곤 한다. 그래서 오히려 난 그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내가 늘 그렇게 이제 그만 포기할까. 도망칠까. 고민하고 고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까워하면서도 어쩌면 나도 반짝 스타 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무리의 한 명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오직 지속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는 사람들만을 진정으로 존경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사실, 그 사람 자체도 자신이 왜 좋은 작품을 만들었는지 모르는 것 같아서 큰 존경심이 생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도망치는 사람들은 팬의 입장에서 야속하기도 했다.
남자 친구와 여기서 마찰이 생겼다. 그는 단 한 번의 걸작을 만들어낸 사람들도 거장에 들어갈 수 있지 않냐고 했다. 하나의 노래, 하나의 작품, 하나의 프로젝트만이라도 걸작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냐고 했다. 음... 그렇기는 하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단 한번 반짝이지도 못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으니, 분명 대단한 일이 맞다.
나는 대화 속에서 무언가 깨달았다. 자신만의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걸작을 냈을 때는, 계속 자신의 길을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는데 우연히 좋은 작품을 내었을 때는 창작자는 오히려 자신의 능력보다 더 큰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그것이 뭔지 몰라 방황하고, 부담감에 정신이 망가진다.
예전에 싸이 님의 연말 콘서트를 간 적이 있다. 그가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를 뒤흔들고 일 이년이 흐른 뒤였다. 그의 한 노래만이 반짝 떴다는 것이 증명된 이후였으리라. 그는 멘트에서 말했다. '사실 저도 어떻게 제가 그런 일을 해냈는지 모르겠어요.' 난 그 말을 듣고 많이 슬펐지만, 그가 소속사를 차려서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살려 계속해서 대중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을 보고는 그는 정말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시도 싸이 소속사로 간 뒤 좋은 성과를 냈다.)
회사 생활도 똑같지 않은가, 한 번의 좋은 성과를 내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다음이 더 어렵다. 분명 한번 반짝였던 사람들은 반짝이는 무언가를 내면에 품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이 조금은 부담을 내려놓고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면 잘 해낼지도 모른다.
봉준호 감독님이나 미야자키 하야오 등등, 앞서 말한 거장들과 반짝이고 사라진 사람들의 차이를 생각해본다. 그들도 실패한 적이 있다. 하지만 묵묵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또 고민했으리라. 그게 아니면 그냥 천재일까.. 그들이 천재이면 또 어떤가. 천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노하우, 규칙, 장점들이 점점 더 견고 해지는 것. 그것만이 유일하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이 자기 복제라고 비난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기 복제와 본인만의 방식을 만드는 것은 한 끝 차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복제라도 하며 조금씩 고민하고 나아진다면 분명 멈춰있는 사람보다는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천재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머물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