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에 가면 메가버스가 있는 거 아니었나요?
난 무사히 한인 민박에 도착하여 11시 반쯤 지하철을 타러 갔다. 12시쯤 영국으로 출발하는 메가버스를 타러 미리 알아두었던 역으로 향했다. 근데 여기서 잠깐, 동양인 여자애 혼자서 밤 12시에 메가버스를 탈 생각을 한 건 또 왜 그런 것일까? 파리의 지하철은 늦은 시간까지 운행하기 때문에 최대한 놀다가 막차를 타려던 것이었던 것인데, 이 계획은 정신이 나간 것이 분명했다.
나는 12시 10분 전쯤에 메가버스가 있다는 역에 혼자서 내렸다. 깜깜하고 흑인들이 주변에 서성이고 있었다. 여행하면서 봐온 파리의 거리의 부서진 캐리어들이 떠올랐다. 친구가 말하길 파리에서는 도둑들이 여행객 캐리어를 털어간다고 했다. 그리곤 그 캐리어를 부셔서 물건들을 가져간다고 했다. 갑자기 모두가 도둑 같아 보이고, 날 해칠 것 같이 위험천만해 보였다. 그때, 난 메가버스를 타는 곳이 어딘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만 알아오고 정확히 어디인지를 적어두지 않은 것이다.
진짜 바보인가. 왜 낯선 곳에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촉박한 시간을 끼고! 버스를 타러 가면서 이렇게도 대비도 없이 도착한 걸까..(인터넷은 못하기 때문에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 난 한줄기 희망처럼 캐리어를 끌고 가는 무리를 발견했다. 그들을 쫒아가야 했다. 그들이 자신들의 숙소로 갔을 수도 있고, 파리 사람들이어서 집으로 갈지도 몰랐지만, 그냥 막무가내로 그들을 쫒아갔다. 그리고 난 점점 불어나는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어찌어찌 메가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것이다.
피난민 행렬처럼 보이는 그 사람들을 보고 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생각보다 버스 정류장은 굉장히 역과 떨어져 있었던 기억이다. (그냥 무서워서 그렇게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다.) 추운 11월의 여행, 런던 행 버스 앞으로 가서 내가 이 행렬의 유일한 동양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문득 고독함을 느꼈다. 근데 당연한 것이, 현지 여행자도 아닌데 누가 12시에 버스를 타고 돌아다닐 생각을 하겠는가. 그것도 여자 혼자서. (오히려 현지인 포스..)
난 그렇게 런던행 버스에 올랐다. 몇 번의 여권 검사를 중간중간 버스에서 내려서 진행했다. 그리곤 또다시 다들 내리는 눈치였다. 나도 그들을 따라 내렸다. 내리고 보니, 나는 웬걸 배 위에 있었다. 아. 버스가 다니는 길이 없으면 배에 버스를 싩고 가겠구나. (길이 있는 줄 알았던 바보) 이것도 여기서 내려서 알았다. 아니 그럼 그냥 버스에 사람을 두면 되지 굳이 또 버스 기사는 승객들에게 배에서 자유시간을 즐기라는 것이다. 너무 넓고 나 혼자 동양인이었다. 난 겁에 질려서 제일 밝고 안전해 보이는 로비의 긴 의자에 앉았다. 몇몇의 백인 청소년들이 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보고 지나갔던 것 같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날 다독이며 여행책을 읽고 있었는데 어느새 긴장이 풀려 그 자리에서 까무룩 잠들고 말았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시 버스로 슬슬 돌아가는 승객들을 발견했다. 나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그들을 따라갔다. 그렇게 무사히 난 런던 땅을 밟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