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시작, 그 위대한 도전을 함께 할수 있다면 얼마든지.
“L책임님, 혹시 잠깐 시간 있으세요?”
회의를 끝내고 미간에 주름을 애써 피며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데,
옆 부서 인턴직원이 잠시 내게 묻는다.
쭈뼛대며 묻는 걸로 봐선, 뭔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다.
금새 인상을 풀고, 그에게 대답한다.
나이들어가는 직장인으로서, 어떤 방향으로든 젊은 친구들이 먼저 말을 건내준다는건,
더 나아가 뭔가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내 삶이 아직은 괜찮다는 증명 같은 것이라 기분 좋은 일.
"응, 괜찮아. 필요한 거 있니?"
"저 다른게 아니고, 제가 취업 준비하고 있는데요.“
대학 4년생인 취업 준비생들을 주로 인턴으로 뽑는다.
그들은 인턴십 기간을 통해 장차 필요한 현업 기회를 제공받고 경력을 추가할만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회사는 그들을 통해 부서에서 필요한 일을 덜기도 하고 “아직 두뇌가 깨어있는 젊은이들만이” 줄 수 있는 새로운 접근과 트렌드를 얻기도 한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사무실에서 친한 동생처럼 지낼 수 있는 유일한 인원인 그들과 친하게 지냈고,
연차가 쌓인 뒤로는 어린 시절의 나처럼 그들과 완전히 편하게 지내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면서도(얼마나 불편하겠는가 나이 많은 내가!),
그들에게 ”짧지 않은 시간 여기서 지내면서 얻어가야할 것들“에 대해서 잘 챙겨가라는 당부를
스몰톡의 주제로 삼는, 허허실실 웃으면서 한번씩 중요한 것들을 리마인더하는 아저씨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제법 관계를 형성하면 그들에게 자소서나 면접, 취업에 대해서 대화를 걸기도 한다.
사무실 내에서의 시간을 쪼개 그들이 집중하는 것을 들어주고 지지해주는 것이,
유일하게 내가 그들에게 가치있는 뭔가를 전달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괜찮으시면, 책임님께 자기소개서를 조금 봐주실 수 있나 부탁 드리고 싶어서요. 바쁘신데 죄송해요."
그리고 그것들을 증명하기 위해서, 짧은 순간 스치는 자소서에 얼마나 공을 들여야만
본인들의 가능성을 면접관에게, 회사에게 알릴 기회를 얻을 수 있는지 그들에게 알려주게 된다.
나는 첫 회사(대기업)에선 스탭부서(인사팀)로 시작하여 동 사의 현업까지 경험해봤고,
두번째 회사인 지금 직장에선 현업으로 일을 시작하고 지원부서에 왔다.
이전의 사회 생활과는 정 반대의 상황을 맞고 있는, 조금 특이한 커리어 패스.
그 상황 속에서 신입/경력 자소서와 면접은 적지는 않은만큼 경험이 있다.
언젠가-
어떤 선배님이 본인 파트의 대학생 인턴 직원의 자소서와 진로에 대해서
한번 봐주는 것이 어떠냐고 말씀하시면서 해주신 이야기가 있다.
인턴 직원에게 자소서, 취업 관련해서 한번 얘기해줄 수 있어요?
조금만 도와주면 학생이 “훨씬 좋은 길”로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요.
선배의 이 표현에서 잠시 생각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래. 내 도움을 통해, 훨씬 좋은 길로.
내가 누군가의 길에 빛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내 살아온 인생을 통해서 이제 시작하려는 젊음에게 하나라도 보탬이 되어, 그가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다면
예민한데 혈기까지 넘쳐 늘 불안정하던 20대 시절
큰 고민과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면 주변의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당시엔 최선이 아니었더라도 그 조언들을 나만의 언어로 해석하여 잘 품고 있으면
시간이 지나 늘 나의 자산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내가 인생의 중요한 순간 중 '선배가 부재하여 아쉬웠던 순간'은
“취업을 준비할 때 나를 도와준 선배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늘 외로운 싸움을 하고, 족보 없으니 매번 면접을 치루고 깨지며 배웠다. 철저한 레슨런으로.
서러웠다. 왜 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 나를 끌어주는 선배를 찾을 수 없다는 아쉬움.
특히 첫 회사에서 이직을 준비하던 시기에는 어찌나 압박 면접관들이 나를 기다리던지!
대기업 관두고 다른 필드로 경력을 피봇팅해서 간다고 주장한 나는,
그들에게 먹잇감 수준으로 심문을 당하기 일쑤였다. 서러웠다.
나를 응원해주는 선배도 면접과정에서의 피드백을 줄만한 선배도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후배들이 자소서를 가져오면 늘 첨삭해줬고,
그들이 원하는 커리어와 직장에 대한 조언도 많이 해줬다.
그때마다 후배들의 빛나는 눈을 보는 것이 즐거웠고
내 경험이 그들에게 뭔가 도움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끼곤 했다.
그저 다른 목적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이 필요한 때를 가까이에서 발견하고,
도움을 받고자하는 사람에게 내 경험을 십분 사용하는게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대답했다.
그래. 잠깐 얘기좀 하자.
한참이나 어린 인턴 직원의 자소서/진로 고민을 해준다? 쉽지 않은 용기다.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가치있는 대화가 이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기왕 용기를 낸거 제대로 도와주기로 다짐했다.
“네 책임님, 정말요? 너무 감사해요.”
그렇게 그에게 살아온 여정과 지금 생각하는 회사들, 본인이 계획하는 향후 계획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굉장히 놀란 점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취준생들은 ‘비교 기준’이 없다.
물론 사회인 중에서도, 직접 면접장에 직접 들어가 면접 현장을 보고,
담당자가 되어 자소서를 직접 검토하는 케이스가 ‘많은’ 경우가 잘 없긴하다만,
대학생들은 모든 경우가 처음이기 때문에 본인을 객관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사실 채용은 천재를 뽑는게 아니다.
양 옆의 몇명보다 사람을 뽑는거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취준생들은 “내가 옆 사람보다 뭘 잘하는지 몰라서” 스펙에 목을 매게 되고, 그들이 보는 스펙의 기준은 학점, 어학점수, 외부 활동이 다인 것이다. 물론 훌륭하고 분명히 구분되는 기준이다.
그래. 같이 해보자.
네 인생을 너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테니, 니가 가진 리소스는 네가 잘 챙겨와.
나는 그걸 얼마나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제안할 수 있을지, 그게 어떻게 좋은 성과인지 같이 봐줄게.
대신 자소서 봐줄 때랑 면접 준비할 때는 내가 평소에 대하던 것과는 좀 다를거야.
독설이든 빨간 펜을 긋든 냉정하게 볼거야. 변명하지말고 내가 말하는건 무조건 답을 찾아서 와야돼.
"알겠습니다."
그 질문과 대답으로,
나는 그의 인생 중요한 기로에 적극 개입하기로 했다.
젊은 당신의 인생을 흔들어놓을 위대한 순간을 위해,
하나씩 제가 알고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세상의 모든 젊은 H군과 대화하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오로지 제가 직접 경험하고 상담한, 함께 고민한 이야기에 대한 글을 씁니다.
글에는 특정인을 지칭하는 내용은 없으며, 다양한 상황에 대한 재해석을 담고자 합니다.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 '어떤 사람'에 대해 다루는 글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