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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Sep 15. 2024

퇴사 후, 홀로 제주로 떠났다

혼자 제주여행 2일 차


살이 타들어 갈 것만 같은 제주의 아침 햇살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삼다도라는 명성답게 바람이 거세게 일었고, 이윽고 구름이 하늘을 덮어 적당히 걷기 좋은 상태가 되었다.

성산일출봉으로 이어지던 큰 길 옆 오솔길이 눈에 들어 발길을 옮겼다. 곧이어 눈앞에 거대한 해변이 모습을 드러냈다. 광치기해변이었다. 화산 활동의 흔적인지 검은빛 모래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말과 사람이 거니는 그곳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문득 이곳으로 훌쩍 떠나온 이유를 되짚어본다. 짧은 시간 나에게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였다지만, 생각해보면 퇴사 직후라면 누구나 하는 일종의 트렌드 같은 것이었기에 모방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즉, 내가 진정 갈망한 것이라기보다는 세상 속에 나를 과시하고 외치기 위한 일종의 요식행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철저히 개별화되었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와 교류는 배제되었고, 오직 나에게서 출발해 나에게만 울려 퍼지는 혼자만의 대화만이 펼쳐졌다. 천만의 시선이 오가는 서울에서의 삶이 지긋지긋하여, 그저 혼자 되는 것이 자기독립과 자아 완성의 최종 단계라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러나 공허했다. 나는 나 혼자로서는 끝내 살아갈 수 없음을 이곳에서 깨닫게 된다.


돌이켜보면 완벽할 수 없음에 스스로 괴로워했던 것 같다. 생채기 나는 것도 극도로 두려워했고, 내면의 불안함과 결핍, 무능력을 들키게될까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결핍과 무능력’으로 불리는 것들은, 사실이라기 보다 타인과의 비교 끝에 정의된 개념이었다. 파편화된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남들과 견주고 움츠리며 결국 나를 갉아먹었던 것이다. 나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제대로 알고 있던 것이 없었던 것이다. 고립되며 돋보이는 내가 되는 것이 아닌, 부딪히며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했다.*



결국 나는 혼자이면서도 홀로 될 수 없는 존재고, 당신들로 인해 살아가며 성장할 수 있는 미약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대들의 삶이 궁금하다. 기어코 부딪히고 싶다. 그렇게 깊이 모를 낯선 세상을 기쁘게 맞이하고 더 나은 나와 모두의 내일을 만들어 가고 싶다. 그러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온전한 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고자 한다. 어디서 본 듯한, one of them이 아닌 one and only가 되기 위한. 깊이 있고 흔들리지 않는, 당신들의 세상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하여.


바람이 잠잠해진 섬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진다. 그리고 감사하며 걷는다. 혼자만의 방에 갇혀있었다면 느끼지 못할 것들이다. 

(0829)        


*한병철, 타자의추방으로부터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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