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색이 더 바래기 전에

by 김민영

무료한 일상과 관계 속에서 이따금 일탈이 필요했다. 강을 거슬러 낯선 동네로 향한다. 거리의 풍경은 어느새 단풍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세상은 엉성한 규칙으로 말미암아 주기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늘 같은 것을 먹는 나를 당신은 책망하였다. 그것은 진부함, 게으름 아니 무기력함에서 비롯한 것일 지도 모른다. 살고 일하고 내게 주어진 무수한 역할을 다 해내는 동안 충분히 지쳐있었다. 더는 혼나지 않으려 잠깐 찾는 시늉을 한다. 어떻게는 상황을 모면하고 나면 그제서야 나는 안심을 한다.


관계 속에서 기대하고 상처받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나는 기대하지 말라고 말했다. 누적된 관계가 쌓아 둔 앙금을 다 풀기 위해선 기다려야 한다고. 좋은 때가 나타나기를 그리고 예상치도 못하게 그런 순간은 온다고 말했다. 한참을 갸우뚱거리다 당신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 역시도 온전히 정리되지 않은 말이었으니까.


그럴 수도 있는 것들의 착잡함, 진회색 하늘 아래의 단풍 구경과 기대만큼 맛있지 않았던 비싼 양식. 따분하고 무심하던 말과 마음들. 어떤 틀에 갇혀 자유가 소중했던 짐승들은 때로 울타리를 넘어섰다 갈망을 찾기 위하여. 애탄 마음은 주인의 몫이다


누려라 자유를 마음껏 온몸으로 살아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자유로움을 짐짝 같던 역할과 의무를 벗어던지고서 모든 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헤매는 존재였으므로, 북촌의 단풍길을 셔터로 찍고 또 찍어도 결국 찾을 수 없었던 우리는


불편한 위선과 부당한 꿈들과 세상의 최면 속에서, 걸음으로써 나는 반항하였다. 그 모든 것들을 기꺼이 직시하면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고분고분하게 순응하지도 않으며 그 모든 시선들을 끝내 이겨내며 잊히지 않을 것이다. 기억될 것이다. 영생할 것이다. 그러나 지표 위의 우리는 지층이 되고 말 거야 모두 숨이 끊긴 채 잠들게 될 거야


그것 또한 거대한 세상의 규칙이라면 규칙이겠지

자연스레 단풍이 들듯이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을 더 살면 환갑이라는 생각을 하니 숨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생각을 털어내려 나는 재빨리 몸을 움직인다. 나에겐 더 많은 일탈이 필요했다 환갑이 되기 전에 아니 서른이 되기 전에


세상의 색이 더 바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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