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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알감자 Apr 05. 2022

「문득, 이따금씩 쓰인 일기」 : 행복한 말지옥에 갇혀

「문득, 이따금씩 쓰인 일기」는 과거에 쓰인 짤막한 일기들을 모아 놓은 글입니다. 때문에 게재된 날과 쓰인 날이 다를 수 있습니다.





유독 나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모임이 있다. 그런 자리일수록 왠지 모르게 시간은 전광석화처럼 흐른다. 나고 자란 곳을 떠나 있거나, 서로의 삶에 집중해 바삐 살다 보면 동네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모임은 항상 만남은 짧고 이별은 길다. 모두가 그 만남 동안 못다 한 회포를 사정없이 풀어내기 위한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매번 모임의 대화거리가 가득 찬다.


우리는 그것을 소위 '말지옥에 갇힌다'라고 표현하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모두가 그곳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아는 지옥 중 가장 행복한 축에 속한 지옥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번 모임에선 우리의 앞자리가 바뀌었음을 자축하며 세월의 격세지감을 통감하는 시간을 가졌더랬지. 학교 앞 분식점에서 조금 더 크게 뭉쳐진 주먹밥을 골라먹던 시절에서 먹는 데엔 돈아끼지 말자며 디저트 트레이를 쌓아 올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들 각자의 삶에는 얼마나 많은 별일과 평소가 반복되었을까.


말지옥에 갇혀 웃고 떠들다 잠든 나날을 고이 접어 잘 간직했다가 외롭고 지난한 어느 날에 꺼내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각자의 일상에서 모두가 덜 슬프고 많이 웃으며, 무탈하고 건강하게 살다가 좋은 날 다시 만나자.



[2022.01.30]

문득, 이따금씩 쓰인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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