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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알감자 Sep 15. 2021

어느 29.7살의 심경고백

서른을 앞둔 스물아홉




이 글을 쓸까 말까 고민을 참 많이 했다. 무엇이 그리 손가락을 주저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글을 게재할 때보다 염려와 조심을 한 스푼씩 더 담았다.


올해 스물아홉이다. 세밀하게 쪼개자면 4개월 뒤에 서른을 앞두었으니 29.7살에 가깝다. 단순히 앞자리 수가 바뀌는 데에서 오는 어색함과 이질감. 내가 어느새 훌쩍 커버린 것 같은 격세지감마저 조금 느낀다면 다들 피식 웃으려나.


요즘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토픽은 단연 서른이다. '우리 정신없이 연말 정산 해치우고 나면 서른이',  '12월에 연말여행 다녀올까? 근데 돌아오면 다음 달에 서른되네' 라며 우스갯말을 늘어놓지만 저마다 서른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아이 때는 어엿한 성년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것 같다. 부모님 옷깃 붙들며 사달라 조르던 물건도 마음대로 사고, 멋들어지게 술 한잔도 걸칠 줄 아는 그런 어른이 되리라 다짐하며.

20대 초반엔 직장인의 삶을 동경했다. 프로셔널하게 업무를 헤쳐 나아가 주체적인 삶을 이끄는 모습이야말로 비로소 어른인 것이라 짐작하며.


직장을 다니고 있는 현재, 미루고 미룬 숙제처럼 그렇게 나는 뜻하지 않게 어른이 되는 것을 미루고 있다.

그렇지만 하나만은 능숙해졌다 확언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말하자면 '눈칫밥'이다.

'oo아무개가 이것을 싫어한다'는건 어찌 그리 기가 막히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눈빛 어투 몸짓과 같은 비언어적인 요소로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판가름할 수 있게 된다면, 어른에 성큼 가까워진 걸까.




우연히 보게 된 기사가 있다. 즐겨 봤던 만화 구의 엄마 봉미선의 나이가 29살이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그 시절 만화를 보던 아이의 눈엔 서른을 앞둔 29살이 까마득한 어른의 나이였는데, 지금의 나는 많은 것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었을까.                                  


나는 눈칫밥을 아는 어른이기도 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고, 아직은 완벽한 어른이 아니기도 하다.

그러니 열렬히 환대해줄 만큼은 아니지만 여느 일상처럼 은근하고 담담하게 맞이하자.


늘 맞이했던 나이처럼 그렇게. 나의 서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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