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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Jun 19. 2023

무엇이 퀴리 부인을 죽였는가?
괴담과 과학의 효용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대하는 우리의 관점에 대해서

일본 정부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희석해서 바다로 내 보내고, 청정지역 알프스산을 떠 올리게 하는 '알프스*(ALPS: 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소위 '다핵종 제거설비**'라고 우리나라에서 과분하게 번역하고 있는 장치로 위험 물질을 걸러내고, 방류되는 오염수의 성분을 잘 분석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여 적절하게 조치해 나가겠다고 한다. 


(*유럽 '알프스' 지역 지자체나 관광 협회에서는, 핵물질을 걸러내는 해당 설비 이름을 일본이 '알프스'라 부르지 못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알프스'라는 단어를 들으면,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뛰어놀던 청정 지역 알프스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핵오염물질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물론, 일본이 청정한 알프스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차용한 것이라 짐작이 가능하다.)


(** ALPS: 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을 구글번역은 '고급 액체 처리 시스템', ChatGPT는 '진보된 액체 처리 시스템'으로 번역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다핵종 제거설비'라는 낯선 번역은, 원래의 소박한 작명에 비해 이름 자체로 '여러 가지 핵 물질을 깨끗이 제거하는' 신뢰할 수 있는 '당신들이 알 수 없는 수준의' 초고도의 장치라는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다.)


환경단체


환경단체는 걱정이 많다. 희석해서 버린다고 해도 방사능 물질의 총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고, 이름도 아름다운 알프스(ALPS)를 통해서 걸러도 오염 물질이 나왔으며, 해당 기술을 신뢰하기 어렵고, 몇 백만 톤에 달하는 오염수의 성분을 분석하고 모니터링하기란 불가능하고, 일부의 검사 결과로 전체의 위험성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왜 시끄럽나?


일본은 방류하려고 한다. 안전하지 않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환경단체는 반대한다. 안전하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운 이유는, 똑같은 결과와 상황을 두고 서로 다른 관점의 해석과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놈의 '과학적 근거'이다. 이쯤 되면 대충 눈치를 챌 수 있는 것이, 똑똑한 우리  현생 인류가 '오염수인지 처리수인지'하는 물질이 아직 어떻게 되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정확하게 모른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그런 주장의 과학적인 근거는 무엇인가요?"라고 되받아치면, 명쾌하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명확한 자료나 과학적 근거를 양측 모두가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를 몰아붙이고 논쟁을 벌이고 싸우기가 딱 좋은 상태인 것이다.


"나는 오염수를 마실 수 있다"


한국의 어느 고위 관료가 자신은 "오염수를 마실 수 있다"라고 했단다. 그래서, 무슨 이렇게 위험하고 무지성적인 관료가 계신가 싶어서 찾아보니, "과학적으로 처리되어 기준에 맞는다면 오염수를 마실 수 있다."라는 표현이었다. 문장의 전문을 살펴보니, '절대로' '마시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표현'으로 이해되었다.


"당신이 마신다고 했으니 마셔 보라"라고, 누가 오염수를 들고 온다고 해도, "과학적으로 처리되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마실수가 없습니다."라고 하며 거부할 수 있을 것이고, 과학적으로 처리되었다는 근거를 제시하며 다시 몰아붙여도, 60여 종 이상의 핵물질의 기준을 들먹이며,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에 마실 수가 없습니다."라고 또 거부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싸움과 논란의 이유를 설명하였듯이, 현재 '과학적으로 처리되었다'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염수를 마실 수 있다"라고 큰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것은, "나는 오염수를 마실 걱정을 하지 않는다."라는 발상에서 가능하였다고 생각한다.


과학적으로 처리되어 기준에 맞는다면


건강상 상당한 위험이 초래될지도 모르는 원전 오염수를 '마실 수 있다'라고 큰소리칠 수 있었던 전제 조건처럼,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과학적으로 처리되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처리되었고, 또, 안전하지 않다고 인정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방류를 할 수 있다. 동시에, '과학적으로 처리되고, 동시에, 안전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방류를 반대한다.


과학과 괴담: 과학의 정치화


'과학적으로 처리되어, 안전하지 않다고 인정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방류를 결정한 국가와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식을 '과학적'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과학적으로 처리되고, 동시에, 안전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방류를 반대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처리되지 않았다는 근거와, 안전하지 않다는 명확한 근거도 없이' 대중들을 동요하게 하는 근거 없는 '괴담'을 유포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마리 퀴리는 죽었다


방사능 연구의 선구자이며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하여 노벨물리학상을 타고, 금속 라듐을 분리하여 노벨화학상을 탔다. 프랑스 소르본느대학 물리학과 수석졸업, 수학과 차석졸업, 소르본느 대학 최초의 여교수, 두 차례의 노벨상 수상, 현재 물질론 개념의 설립자. 이는 모두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 과학자 마리 퀴리(1867~1934)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그녀는 방사능 연구에 있어 당시 최고의 과학자라 일컫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마리 퀴리는 죽었다. 죽음의 원인은 그녀가 그토록 애정을 기울여 연구해 온 ‘방사능에 의한 백혈병’이었다.


지금부터 100년 전 당시에는 방사선이나 방사능이 그저 스스로 빛을 발하는 형광현상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방사능에 전문가인 그녀나 그녀의 남편조차도 조심하지 않아서 그녀는 붉게 타오르는 방사능 물질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기도 했고, 남편인 피에르 퀴리는 라듐을 유리 시험관에 담아 셔츠 윗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바람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의 과학


당시, 가장 앞선 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었던 마리 퀴리는, (당시의) '현재의 과학'으로 '과학적으로 안전하지 않다고 인정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방사능 물질을 주머니에도 넣고 다니고, 만지작거리다가 잠자는 머리맡에 두기도 했을 것이다. 결국에는, '해당 물질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과학적인 업적을 이루기는 하였으나, (지금 우리의) '현재의 과학'으로는 '안전하지 않다고 검증되었고 아주 위험하다는 사실이 상식으로 되어있는' 해당 물질에 의한 방사선 피폭으로 악성 빈혈 등으로 몹시 고생하며 요양원을 전전하다가 사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인체의 여러 생리 기능이 완전히 망가졌을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의 과학이 미래의 안전을 보장하는가?


당시 마리 퀴리는 '현재의 과학'의 상징이었고, 마리 퀴리의 사례는 현재의 과학이 가진 한계의 표본이다. 마리 퀴리가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었던 당시의 '현재 최고의 과학적 지식'으로는 방사능 물질의 위험성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했고, 발견된 명확한 과학적인 증거가 없었다. 현재의 마리 퀴리가 과학적으로는 안전하지 않다고 인정할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미래의 마리 퀴리는 고통 속에서 죽었다. 마치 '현재의 과학적 판단'이 안전하고 밝은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처럼 홍보되고 인식되지만, 실제로, 현재의 과학이, 현재의 과학적 이해가, 현재의 과학에 근거한 추정이, 미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과학이 미래의 안전을 장담한다면, 마리 퀴리는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지 않았어야 한다.


현재 의학 기술로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도 사망하였다


의학 드라마에서, 수술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에게 의사가 전하는 대사 중에 하나다. "저희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현재 의학 기술로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통곡하며 쓰러진다.


드라마에서는, '현재의 의학 기술로는 치료할 수 없는 병이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에 수긍한 사망한 환자의 가족들은 '현재의 의학 기술로는 살릴 수 없는 병'이었음을 아쉬워하고, 그런 와중에 '최선을 다해 준' 의료진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런 상황을 대입하여,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는 '현재의 과학 기술로 할 수 있는 최고의 방식으로 처리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미래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도, "당시의 과학 기술로 처리되지 못한 것이 있었다는 것이 아쉽고 안타깝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었고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변명하고 회피할 수 있을 것이다.


선택


하지만, 의사의 선택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선택은 다르다. 당장 처치하고 시도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중한 상태의 환자를 위한 결정이었다. 그래서, 환자의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시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SF 영화처럼, 환자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학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냉동하고 소생시킬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의사는 현재의 의학 기술로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의 치료를 진행하지 않고, 밀봉하고 냉동하여 미래의 의학 기술로 치료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치하였을 것이다. 이 때도 의사는 수술실 앞 가족들에게 똑같이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저희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현재의 의학 기술로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한 병명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학 기술이 발견되면 그때 치료를 받고 완치하여 건강하게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처리는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와 달리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 인간의 신체는 밀봉하고 냉동하여 보관하였다가 다시 소생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는 밀봉하거나 통제 가능한 상태로 보관하였다가 오염원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과학 기술이 발견되면 그때 처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돈도 많이 들고, 앞으로 간병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인데 이번 기회에 깨끗하게 정리하자"라는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유족의 의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거나 비효율적이라는 이름으로 미래의 회복을 선택하지 않고 현재의 죽음을 선택하는 유가족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현재의 과학과 괴담


만약에 마리 퀴리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연구 중인 물질이 혹시나 위험한 것은 아닐까? 그러니, 그 물질이 위험하다는 전제하에 조심스럽게 취급하고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그때 마리 퀴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연구도 바쁜데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어? 괜한 괴담을 퍼트려서 연구실 분위기 망치지 말고 입 다물고 있어!" 아니면, "미처 그런 생각은 못했네. 혹시나 위험하다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실 동료의 건강도 위험할 수 있으니 더 안전하게 연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


인공 방사선 원소의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탄 마리 퀴리의 장녀 이렌 퀴리도 방사능 피폭에 의한 백혈병으로 죽었다. 아무도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아무도 위험을 말하지 않았거나, 아무도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한 경고의 말을 듣지 않았나 보다.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


마리 퀴리 가족의 사례는, 현재의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거나 검증이 어려운 사실과 상황에서,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해서 우리가 가장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함을 잘 나타내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확인할 수 없지만, 혹시나 위험할 수 있다면 그 방법은 선택하지 않아야 한다. 검증 기술이 충분하게 발전된 후에 확인해 보니, 그 방법을 선택하였었다면 정말 위험한 결과를 맞이했을 것이라고 판정이 나거나, 그 방법을 선택하였어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판정이 나도 '선택하지 않았다'면 둘 다 안전하다. 만약에, 현재는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방법을 선택하였고, 결국에는 위험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면 그때는 너무 늦고 피해는 가혹할 것이다. 다행히 문제가 없었다면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둘 중 하나만 안전하다. 그렇다면, 둘 다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노트


마리 퀴리는 많은 연구 노트와 자료를 남겼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도 방사선을 배출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 자료에 접근할 수 없다고 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마리 퀴리의 필기 노트는 여전히 방사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몇 세기에 걸쳐 납으로 만든 상자에 넣어서 보관해야 할 정도의 위험한 상태라고 한다. 마리 퀴리의 노트를 보려면 서명하고 방호복을 입어야만 취급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Boal Conservation, Marie Curie's Radioactive Documents


노트는 납 상자에, 그런데, 바닷물은 어이할꼬


방사능에 오염된 마리 퀴리의 작은 노트는 적당한 크기의 납으로 상자를 만들어서 넣어 두면 될 일이다. 하지만, 조류를 타고 온 세상으로 퍼져나갈 바닷물은 어찌할지 난감하다.


결국, 특정 국가의 이익과, 특정 집단의 이익과, 현실적 대안과, 현재의 과학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방류가 될 것이다.


그래서, 부디 현재의 과학기술로도 충분히 유해한 핵물질이 모두 걸러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부디 현재의 과학적 판단이 틀림없고 정확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부디 현재의 과학적 기준이 현명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부디 현재의 과학적 기준에 따른 우리의 결정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안전하고, 이 땅에서 미래를 살아갈 후손들에게도 안전하기를 바랄 뿐이다.


괴담을 누군가 말해 주었더라면


마리 퀴리에게 "방사능 물질은 위험할지도 몰라. 그러니, 그렇게 함부로 처리하지 마."라는 괴담을 누군가 말해 주었다면 그녀가 조금은 더 오래 살고 더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어느 요양원의 침대에서, 방사능에 피폭되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통스러워하는 마리 퀴리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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