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치노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더욱 선명하게 그려지는 그날의 기억이
스크린 속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졌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할수록
만약에라는 의미 없고 헛된 가정의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끊임없이 찌르기 시작했다.
그래 만약에
만약에 그날 내가 늦지 않았다면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아니 아예 그런 망할 약속 따위는 하지 않았다면.
그때 내가 늦은 건 정말 그 이유가 아니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면
그럼 지금 너와 난 같은 곳에 있었을까.
아니 그때가 아니더라도
네가 나에게 욕을 퍼부었을 때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진실을 말했다면,
그럼 이렇게 보내지도 못할 편지를 붙들며
울지 않을 텐데.
너는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랬을까.
이제와 물어도 대답할 수 없는 너란 존재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해주려고 했는데.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그때의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울며 비는 너를 보며
돌아서지 말았어야 하는데.
끝까지 그 꼴을 보고 있어야 했었는데.
알고 있었다.
8년 전 우리기 처음 만난 그 날.
그날도 눈 내리는 추운 겨울이었지.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