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하원하고 나와 아파트 사잇길을 걸어간다. 도로에 아이보리색 레이가 서있다.
주간노인보호센터.
뒷문이 열리고 스스로는 절대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마르고 힘없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내린다. 한 사람은 보호자, 한 사람은 요양보호사임에 틀림없다.
할아버지 양쪽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부축하며 오늘도 감사하다는 대화를 나누며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신다. 할아버지는 걷는다기 보다는 발을 바닥에 끌며 다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한 채 작은 걸음으로 이끌려가듯 옮겨진다.
전에도 이 시간이면 몇 번을 보았던 풍경이다. 사람을 부축할 때 팔을 잡는 게 아니라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부축해야 한다는 걸 아빠가 아플 때 배웠었다. 아빠는 피부를 거드리기만 해도 너무 아파했었다. 얼마 전에도 저 힘없는 할아버지를 보고 아빠 생각이 나서 울면서 집에 갔다.
주간노인보호센터에서 할아버지는 오늘 하루 잘 지내셨을까. 아빠가 살아있어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빠가 그리워 눈물이 나지만 이제 아픈 아빠를 돌보지 않아도 되어서 나는 오히려 편하게 사는 게 아닐까. 그냥 그저 울기만 하면 되니까.
아픈 가족이 있는 가정을 보면 잊고 있었던 아픈 일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후회된다. 더 잘할걸. 나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더 잘 간호해 줄걸. 짜증 내지 말고 사랑으로 곁에 있어 줄걸.
하지만 후회해도 소용없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살아있는 가족에게 잘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언젠가 또 후회하지 않도록.
현재를 살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