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찾는 나의 자리
호주 골드코스트에 발을 들인지 딱 13일째.
여행을 온다 하면 각종 유명 관광지와 투어를 알아보는 게 보통이겠지만
나는 도서관부터 찾아본다.
어디를 가든 내가 정착할 곳,
나의 자리를 찾아낼 곳.
그곳이 도서관의 어느 자리가 될지
나는 그것부터 궁금하다.
골드코스트 안에도 다양한 도서관이 많지만
나는 그중 한 작은 마을, 사우스포트의 도서관에 들어섰다.
한 층짜리 작은 도서관이지만
넓다랗고 있을 것은 다 있다.
첫 날은 두루 살펴보았다.
공간에도 낯을 가리는 나의 잔뜩 긴장한 마음을 부여잡고
천천히 둘러보았다.
먼저 들어서면 작은 카페부터 나온다.
처음 두 시간은 그곳에 앉아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도서관 안쪽으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저 떨리는 마음을 안정시키며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원서를 꺼내 읽었다.
Charlotte's Web.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이곳이 한국인지 호주인지 도서관인지 집인지 모른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두 시간 정도 지나고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습을 보면서 용기가 생겨
이제 가방을 들고 안쪽 공간으로 발을 내디딘다.
까르르 웃고 떠드는 아이들 소리가
도서관 전체에 울리지만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알고보니 도서관 가장 안쪽에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누워서,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고
컴퓨터 몇 대도 아이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이미 아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
아이들 공간 앞에는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 나열되어 있고,
그곳을 기준으로 밖으로 뻗어나가면서
도서 레벨이 차츰 높아지는 문학도서들이 진열되어있다.
간간이 내가 좋아하는 책들도 눈에 띄고,
처음보는 그림책도, 소설책도 보인다.
그 옆 줄에는 비문학 작품들이 진열되어있고,
또 그 옆에는 나처럼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편하게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작업을 할 수 있는
테이블들이 여럿 나열되어있다.
테이블 중에는 '체스' 테이블도 있고,
'퍼즐' 테이블도 있다.
테이블 위에 아예 체스가 진열되어 있고,
'퍼즐'이 흐트러져 있는 테이블.
보기만 해도 좋았다.
(어제 드디어 딸과 퍼즐 테이블을 장악했었다)
첫날은 그렇게
입구쪽에 한참 앉아있다가 살짝 둘러보는 것으로 끝내고
다시 카페쪽 테이블로 돌아와 책을 마저 읽었다.
그리고 오늘은 이 도서관에
일곱 번째 방문일이다.
간혹 안쪽 테이블에 앉아보기도 하고,
다시 카페쪽 테이블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지만
첫날보다 훨씬 이곳이 익숙해진 나는
오늘 창가쪽에 있는 컴퓨터용 테이블에 자리잡아보았다.
창밖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고있다.
어제까지만해도 온도가 35도를 육박해서 너무나 더웠는데
오늘은 27도로 선선하지만 바람이 너무 불어
걷기조차 힘들 날씨다.
그런 세찬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창밖의 풀과 나무들.
바람에 맞추어 춤추는 초록빛을 내다보며
앉아서 책을 읽고 일을 할 수 있는 이 자리에 앉으며
'레벨 업'을 외쳤다.
나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좋아한다.
특히 도서관은 나에게 설렘과 평화를 동시에 주는 곳이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매일, 일주일 이상은 도서관을 일상으로 삼기를 원한다.
처음에는 그저 위치만 알 뿐이다.
첫날은 입구에서만 서성일 뿐이다.
그러나 두 번째 날 도서관 회원카드를 만들어보고
세 번째 날 이곳에 있는 책들을 대출해보고
네 번째 날 이곳에서 하는 행사에도 참여해보고
다섯 번째 날, 현지 사람들이 즐겨 앉는 자리에
나도 슬쩍 앉아보는 용기가 생긴다.
나는 뭐든지 다 느리다.
책을 읽는 것도 느리고,
누군가를,
어느 장소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시간도 참 오래 걸린다.
하지만 대충 겉으로만 훑어보는 관계는 싫다.
도서관에서 내 자리를, 내 마음에 쏙 들고 이곳도 나를 거부하지 않는
나의 자리를 찾아내는데 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듯,
누군가에게도 내 자리를 마련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오래 천천히 반복해서 만나고 시간을 공유해야한다.
책도 그렇다.
내용을 안다고 해서 그 책을 아는 것이 아니다.
그 책에도 내 자리를 마련해야한다.
오래 천천히 반복해서 또 만나고, 책 속에 비친 나를 발견한다.
들어서기만 해도 떨리고 낯설었던
골드코스트의 한 도서관에서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의 자리에 앉아 있으니
낯선 곳에서 만난 흐린 날씨도
평화롭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