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에 잠이루지 못한 위대한 거인을 만나다
권신영 작가의 <책 읽는 사람,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틈새의 시간, 2023)을 읽다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내가 존경해 마지 않는 단단한 거인의 가느다랗고 연약한 모습을 마주했다.
"글 스타일이 믿기 어려울 만큼 나쁘고
글이 명료하지도 않고 부드럽지도 않습니다.
...
저로 인한 비용과 시간 낭비에 대해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종의 기원> 원고를 투고한 찰스 다윈이
출판 편집자 존 머레이에게 전한 말
고개를 낮추다 못해
온 몸을 바닥에 대고
한없이 낮은 자세로 두려워하는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웃음이 빵 터지는 동시에
목에서 울컥 하고 뭔가 올라왔다.
그 거대한 이름, 찰스 다윈.
진화론으로
인류의 사고 자체를 바꿔버린 사람이
그 위대한 작품을 두고
'글이 엉망이고, 시간만 낭비하게 해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다니...
책을 잠시 덮고 그 마음을
온 몸으로 공감해본다.
찰스 다윈도 불안했구나...
불안을 공감한다.
타인의 판단에 대한
두려움을 공감한다.
자신을 낮추게 되는
연약한 용기를 공감한다.
나 또한 언제나 불안함과 살고 있다.
내 가정이 평화롭길 바라는 마음과
내 일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아이를 잘 키우고 싶으면서도
혹시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늘 불안하다.
그러면서 내 건강과 정신도 흔들릴까 봐
조마조마하다.
동시에,
정말 다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다.
'나만 만족하면 되지, 꼭 도전을 해야 할까'
싶은 마음을 방패 삼아
꿈쩍않고 있기도 한다.
다윈도 다르지 않았으리라.
어쩐지 그의 떨리는 손가락이 그려지고,
그것이 꼭 내 것과 같다.
생각이 줄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다윈 만큼이나
위대한 거인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그랬다.
그 당시, 망원경을 스스로 만들어
목성과 위성을 관측하는 성과를 이루고
세상이 엉뚱한 것을 믿고 있었음을 증명해 놓고도,
그 진실이 받아들여질지 두려워
교황청에 무려 여섯 번이나 발걸음을 옮기며
안절부절 못했던 사람.
결국 종신 가택연금 판결을 받은 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허약한 내 몸 상태를 헤아려 주길... 일흔이라는 늙은 나이에 열 달 간 끊임 없는 정신적인 불안에 시달리고 있네.
-갈릴레오 갈릴레이, <갈릴레이 서한집> Vol.19, 318
별을 향해 내민 갈릴레오의 손은 늘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이 모든 관측의 의미가 묵살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비집고 들어오지 않았을 리 없다.
아인슈타인은 어땠지?
중력파를 다룬 논문을 학술지 Physical Review에 제출해놓고
익명의 심사위원의 반론에 격하게 반발하며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인 답장을 보냈다.
우리는 원고를 보냈을 뿐이다.
익명의 전문가에게 원고를 보여주라고 허가한 적은 없다.
- 아인슈타인, <Letter to John Tate, Editor of Physical Review> 1936
내가 누군가의 평가를 기다릴 때 느끼는
그 무기력하고 초조한 기분을
이 천재 과학자도 동일하게 느낀 것이다.
아인슈타인조차 자신의 작품이 평가받는 걸 두려워했다는 게
이상하게도 나를 위로했다.
(아인슈타인은 이 논문을 결국 철회했지만, 나중에는 결국 해당 심사위원의 반론을 반영해 다시 완전히 새로운 논문을 작성했다.)
반 고흐는 더 처연했다.
단 한 점의 그림도 팔리지 않던 시절,
그는 형 테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밤이면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별빛조차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아.
이 불안한 마음은 언제야 끝이 날까.
-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서간집> Letter 678, 1889
그런 마음을 한참 감당하고 속으로 품으며
그가 사랑하는 별빛을 캔버스에 담았겠다..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별빛 대신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책이었다.
온 집안 곳곳에 가득찬 책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을 때가 있었다.
'그렇게 읽고 읽고 읽기만 하면 뭐해?'
'제대로 살고 있기는 한 거야?'
그런 비웃음이 들릴 때도 있었다.
아마도 내가 나에게 하는 비웃음이었으리라.
그래서 유독 고흐의 저 마음이 내게 깊숙이 와닿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프란츠 카프카는 자신이 쓴 글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두려워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이렇게 유언했다.
내가 죽고 나면, 내 원고를 모두 불태워줘.
그것들이 세상에 남는 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 프란츠 카프카, <Letter to Max Brod>
카프카의 문장 문장마다
통찰과 깨달음을 얻으며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지만,
그 조차도 불안해했다.
그러나 카프카가 품고 있던
그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이 없었더라면
신중하고 밀도 짙은 그의 작품을 통해
이토록 깊이 공감하고 위안을 느끼는 일은 불가능했으리라.
그렇다,
그들도 불안했다.
내 작품을 세상에 내놓아도 불안하고,
내놓지 못해도 불안하고,
내놓고 싶어서 불안하고
내놓을 자신이 없어서 불안했다.
그 불안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떨고, 괴로워하며
고뇌하고, 침체되었다.
나처럼.
위대함은 의심을 품은 자에게만 찾아온다.
- 파스칼, <팡세>
그들의 자취를 더듬어보니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어쩌면 불안은 우리가 무언가를 진심으로 아끼기 때문에 찾아오는 게 아닐까..?
나를, 나의 삶을, 나의 생각과 나의 작품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기에 불안해하는 게 아닐까?
그러니 오늘도
불안한 나를 조심스레 다독이며
내일로, 또 그 다음 날로
조금씩 걸어나가 보려 한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정말 그렇게 믿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