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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버른앨리스 Sep 16. 2018

편리함의 한국, 불편함의 호주


세상에 불편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복잡한 세상, 편할수록 좋은 거지. 

만약 네가 편리함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살고 있는 한국이 네겐 최고일 수도 있어. 많은 나라를 가 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제일 잘 아는 한국과 호주 두 나라만 비교해도, 한국이 얼마나 편리하고 빠른 나라인지 알 수 있거든. 사실 호주와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야. 


중국어 공부를 하려고 인터넷 강의를 수강한 적이 있어. 아무도 인터넷을 안 쓰는 새벽에 몇 시간씩 들여 동영상 자료를 다운로드 받아놓아야 했어. 그렇게 용량이 큰 것도 아닌데, 스트리밍으로는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인터넷 속도가 느리거든. 심지어 나는 완전히 도심에 살고 있는데도 말이야.


호주에서는 모든 일이 더디게 진행돼. 한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보다 수월하게 처리되는 일은 정말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인터넷 신청도 눈 깜짝할 사이에 처리되는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는 한 달 정도는 대기해야 해. 신청해두고 2주 정도가 지나면 ‘설치가 가능한지’에 대한 답을 받고, 또 다음 절차가 진행될 때까지 기다려야 해. 그래서 무언가 고장이 나거나, 서류를 떼야 하는 일이 생기면 일단 한숨부터 나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또 무슨 서류를 내라고 할까. 기다리는 것도 기다리는 거지만, 여기는 모든 서비스가 돈이거든. 


노트북이 고장 난 상황을 예로 들어볼게. 업체에 맡기면 노트북을 일단 뜯어서 고칠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봐야 하잖아. 일단 기술자가 노트북을 뜯었다 하면 최소 5만원을 내야 해. 수리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와 상관없이. 실컷 뜯어보고 ‘이거 못 고쳐, 딴 데 가서 알아봐’라고 말해도 나는 일단 이 기술자가 나를 위해 쓴 시간에 대가를 지불해야 해. 5불짜리 피자를 시키는 데도 배달 비용으로 5불 이 필요해. 한국에서는 간단하게 한 끼 식사 정도는 때울 수 있는 돈을 배달 비용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에 처음에는 뜨악했었어.





그런 호주에 익숙해진 내가 한국에 갈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은

모든 게 너무 빠르고 잘 돼 있다는 거야. 

이 정도까지 모든 일이 빨라야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특히 몇몇 서비스는 겨우 이 돈을 내고 누려도 될까, 싶을 정도로 수준이 높아서 나는 매번 충격을 받아.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나도 9년 전까지만 해도 저렇게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았으면서 말이야. 


언제부터인가 나는 더 이상 한국에서 무료 혹은 헐값으로 받을 수 있는 편안함이 즐겁지가 않아. 단돈 5,000원짜리 짜장면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집까지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것도, 분명 비싼 곳이 아닌데 뼈를 골라내고 먹기 좋게 발라주는 극진한 서비스도, 눈만 마주치면 자동으로 지어주는 미소와 상냥한 얼굴들도, 아침에 주문하면 저녁에 받을 수 있는 미친 속도의 택배 서비스도.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24시간 내내 즐길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나는 이제 진심으로 하나도 반갑지 않아. 


편할수록, 편하다고 느낄수록 한편으로는 불편해지는 마음을 견딜 수가 없어. 편안함에 취해서 못 보고 있을 뿐, 무언가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나는, 그리고 아마 이 책을 읽고 있을 너도 노동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일 거야. 우리끼리 노동을 헐값으로 주고받고 있는 것 같지 않니? 인터넷 수리 기사인 누군가는 금 같은 기술과 시간을 아낌없이 쏟으면서도 그만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집에 와서 짜장면을 시켜 먹을 거야. 그럼 또 누군가는 헐값으로 그 짜장면을 만들고 배달을 하겠지. 미용실 견습생인 누군가도 손님들의 머리를 감겨주며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돈을 받고, 그 돈으로 다른 어딘가에서 또 헐값으로 편안함을 누릴 거야. 






서비스가 돌고 도는데 우리는 모두 가난하고, 

돈을 버는 건 기업과 자본가라는 사실이 슬퍼. 

우리의 기술과 시간과 미소를 헐값에 사서 헐값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를 챙겨 기업들은 커져만 가고, 우리는 편안함에 취해 이 시스템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누군가가 시간을 할애해서 나에게 무언가를 제공했다면,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게 맞는 거잖아.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내가 공짜로 무언가를 얻었다는 건 누군가가 그만큼 손해를 봤다는 뜻이겠지. 내가 집에서 따끈한 햄버거를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건 누군가가 생명을 담보로 빠르게 배달했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나는 그렇게 편하게 햄버거를 먹고, 일터에서 내가 한 노동보다 더 낮은 대가를 받을 수도 있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는, 또 내 노동력으로 이득을 취하겠지.


이렇게 생각하게 된 후부터는, 호주에서 돈과 시간을 더 써야 하는 게 더 이상 억울하거나 아깝다고 느껴지지 않아. 음식값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배달 비용도, 머리를 자르는 비용과 별개인 머리를 감겨주는 비용도, 한국에서는 무료로 받을 수 있는 모든 상담 서비스에 내는 돈도. 이 사람들이 자신의 귀중한 기술과 시간을 나를 위해 썼으니, 나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게 맞아. 거기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아야, 나도 내 차례가 왔을 때 당당하게 나의 몫을 요구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나를 위해 이 크고 작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도, 나와 같은 사람이잖아. 너무 편리함과 효율만 좇다 보면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 이 헐값의 편리함을 만들고 있는 건 바로 우리 중 한 명이란 걸 말이야. 이 모든 게 사람이 만들어내는 기적이라는 걸. 




중요한 게 무엇인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어. 

호주가 한국보다 살기 좋은 점도, 한국이 호주보다 살기 좋은 점도 분명히 존재해. 하지만 나처럼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면, 확실히 한국보다는 호주가 살기 편한 나라인 것 같아. 여기에서 ‘편하다’는 한국에서 보통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나는 한국에선, 몸은 편하지만, 항상 마음이 불편했거든. 호주에서는 돈 나갈 일도 많고, 몸은 여러모로 불편하기도 하지만 이제 익숙해져서일까, 마음만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편해. 


불편하고 느린 호주, 모든 것이 빠르고 편리한 한국. 

너에게 더 맞을 것 같은 나라는, 어느 쪽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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