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이요? 어디로요?”
“필리핀 세부로 가요.”
“얼마나요?”
“2개월이요.”
“아… 제가 배웅해 드려도 될까요?”
“네? 뭘요~ 괜찮아요.”
“아니요. 제가 보고 싶어서 그래요.”
갑작스러운 동화 씨의 말에 내 얼굴이 붉어진 게 느껴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
“부담스러우시면 죄송해요.”
“아아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감사해요. 그 전에 우리, 평일 저녁에 같이 북카페 갈까요?”
“좋아요!”
“그럼 수요일 저녁 7시에 만나요.”
“넵!”
동화 씨를 만난 다음 날, 연차를 내고 외국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요즘은 외국에 한식당도 많고 k-culture가 유명해서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 높지만, 갑자기 2개월을 혼자 머물려니 불안했다. 양념류를 담고 과자류를 살피다 대형 봉지에 든 레몬 사탕을 봤다. 동화 씨가 생각나 픽 웃으며 장바구니에 사탕을 담았다.
“레몬만 보면 생각나서 큰일이네.”
고작 2개월 떠나는 거지만 마지막 데이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공들여 화장하고 내 기준에서 가장 예뻐 보이는 옷을 입었다.
“동화 씨~”
“글 씨, 오늘도 예쁘네요.”
“하하. 동화 씨도 멋있어요. 들어갈까요?”
띠링 -
“어서 오세요~ ‘길모퉁이 북카페’입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글 씨, 어디 가세요? 엄청 화려하네요.”
“왜 그러세요. 평소랑 비슷한데~ 북카페 놀러 왔죠! 제가 어디 갈 데가 있나요.”
“글 씨, 갈 데 있잖아요.”
동화 씨가 불쑥 말했다.
“아, 맞다! 사장님, 저 세부 가요.”
“여행 가세요?”
“아니요~ 잠깐 파견 근무 가게 됐어요.”
“축하해 드려도 되는 거겠죠? 축하드립니다!”
“하하. 감사해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들렀어요.”
“네? 언제 가시는데요?”
“3일 뒤예요.”
“네? 오늘 저를 여러 번 놀라게 하시네요. 아쉽지만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
“사실 2개월 밖에 안 가요. 2개월 동안 잘 버티고 계세요!”
“넵! 그때 뵙겠습니다. 한! 글!”
사장님께서 분위기를 풀어주시려는지 경례 자세로 손을 눈 옆에 갖다 대더니 내 이름을 힘차게 외치셨다. 어느새 익숙해진 풍경을 두고 떠나려니 ‘괜히 가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북카페, 사장님, 동화 씨… 많이 그리울 것 같다.
“글 씨! 여기 봐봐요! 제가 쓴 글씨 분홍색으로 바뀌었어요!”
“어? 진짜네요? 와…”
동화 씨가 적어둔 ‘처음’과 ‘끝’이라는 글씨를 보며 우리의 이야기인가 궁금했다.
2개월 파견 근무 다녀와서 꼭 말해야지. 내가 동화 씨의 끝이 되고 싶다고.
“두 분, 기적을 만드셨네요.”
“네?”
사장님의 말씀에 화들짝 놀랐다.
글씨 색이 변하는 걸 몰래 보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모르실 수가 없었다. 요즘 CCTV 없는 카페도 없고,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기 때문이다.
“기적은 손님이 스스로 만드는 거예요. 기적 책에 적었다고 끝이 아니죠.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자에게 기적이 나타나요. 두 분은 직접 겪고 계시니, 제 말씀 이해하시죠?”
사장님의 질문에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가슴 벅찬 첫 회사 입사, 아팠지만 성숙했던 연인과의 이별, 그냥 아프기만 한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내게 북카페가 나타나고 동화 씨를 만난 것까지…
“제가 열심히 살아서 북카페가 제게 나타났나 봐요.”
“글 씨, 이제 아셨군요. 자신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해 주세요.”
처음 온 날부터 세부로 떠나기 전까지 사장님께 받기만 했다. 공간이 주는 위로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 다녀와서 사장님께 자그마한 선물을 드려야겠다.
- 피유우우우웅
“동화 씨, 공항 같이 와줘서 고마워요.”
“잘 다녀와요.”
“연락… 해도 되죠?”
“당연하죠. 매일 해요. 외로워도 문자 보내고, 행복해도 파톡하고, 심심해도 전화하고, 즐거워도 영상 통화해요!”
“하하하… 동화 씨 진짜 못 말려요. 동화를 많이 읽어서 그런가 너무… 순수하잖아요.”
“아닌데요? 저 완전 테토남이에요. 보세요, 이 팔뚝!”
내 캐리어를 들 때부터 이미 그 팔뚝을 봤다. 아가같이 해맑은 표정에 그렇지 못한 몸… 그걸 내가 어찌 모르나 이 사람아…
“아휴, 네! 테토남 씨! 이건 선물이요.”
“레몬청이네요? 안 새그러워요?”
“새그러운 게 뭐예요?”
“아… 안. 셔. 요?”
“풉, 경상도 사투리인가 보네요. 제가 신 걸 잘 못 먹어서 동화 씨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아, 새그러운 걸~ 제가~ 잘 못 먹어요~”
“따라 하지 마세요~ 저도 선물 있어요.”
“어? 기적 책이네요? 이걸 어떻게…”
“사장님께 여쭙고 받아왔어요. 레몬 향 향수도 팍팍 뿌려놔서 2개월은 거뜬할 거예요.”
동화 씨가 적어둔 ‘처음이 끝이 되길’이라는 문구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이제 갈 시간 다 된 것 같은데요?”
“네, 저 이제 가 볼게요. 동화 씨, 건강히 잘 지내요!”
“2개월 뒤에 만나요. 글 씨, 파이팅!”
“테토남 파이팅!”
그렇게 비행기에 몸을 싣고 세부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