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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재 Jan 01. 2021

Ep.8 여행에서 내가 바라본 건 오직 진실뿐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등산을 하기 위해 자그마치 3시간을 달려온 이곳, 칭청산(青城山). 고작 등산을 하기 위해 이렇게 먼 길을 올 필요가 있었나 싶었지만, 막상 와보니 내가 할애한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듯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내 마음을 내던져버렸다.


칭청산(青城山) 입구를 지나 바로 만나버린 길쭉한 가로수길. 좌우로 길게 시원하게 뻗은 나무들 아래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이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조금 울컥했던 것 같다.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나는 '해외'라는 곳에 왔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을 끄집어 내보면, 내가 태어난 환경은 그다지 평범하지 않았다. 금전적으로 부유하지도 않았으며, 남들보다 어려우면 더 어려웠지 결코 어느덧 하나 제대로 누려본 적이 없었다. 300원짜리 '피카추 돈가스'와 200원짜리 '떡꼬치'가 있으면, 피카추 돈가스가 먹고 싶어도 난 늘 200원짜리 떡꼬치를 골랐다. 유별나게 근검절약을 행하시는 어머니의 철학 때문에 나 역시 100원이라도, 한 푼이라도 아끼어 가정에 보태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커가면서 자연스레 익힌 듯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돈을 모으면 쓸 줄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몰랐고, 어디에 잘 써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나도 20대 후반을 바라보면서 고작 그것도 살아온 인생이라고 느꼈는지 '지금 난 잘 살고 있구나.', '지금 난 미래의 나에게 올바르게 내가 번 돈을 투자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비록 이 글을 쓰는 현재에서 돌이켜 봤을 땐,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이지만, 그 당시엔 너무나도 밝았던 자연의 색채감과 분위기 그리고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나 스스로 예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지금도 이때의 감정이 내 안에 조그만 씨앗으로 남아있다. 이래서 여행을 통한 경험이 큰 힘이 된다고들 하나보다. 나도 크고 작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때의 경험과 추억 그리고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그것들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멀리 내다보면, 중국이라는 나라에게 참 감사하고, 이런 곳까지 흔쾌히 함께해준 '씨에'에게 너무 고맙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꽤 많은 수의 발자국을 남겼는데 아직도 나는 가는 중.


슬슬 더위가 내 땀샘을 자극했다. 차도에 씽씽 달리는 자동차 위에 앉아 편하게 이동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사진이야 차 위에서 찍힐 수 있는 거고, 아직 등산은 시작도 안 했으니 괜한 힘을 뺄 필요가 없다고 느낀 순간,


"아니야, 성재야!"

"분명 수많은 사람들이 편한 교통수단을 내버려 두고 걸어가는 이유가 있을 거야."

라며 정신 승리하며 '씨에'와 함께 메고 온 가방 안에 꼬깃꼬깃 숨겨놓은 자유시간과 손톱만 한 ABC초콜릿을 꺼냈다.

그렇게 일찍 출발했어도 등산하다 혹시나 배고파 죽을까 봐 조금이나마 나의 젊음을 누리기 위한 연명 작업(?)을 위해 한국에서 싸온 간식을 가져왔다. 나는 아직 초콜릿 같은 간식을 좋아할 나이이기도 하고.


초콜릿이야 한국이나 중국이나 그 맛이 그 맛이고, '씨에'도 나를 만나기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한국인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한국산 과자의 맛에 길들여져 이질감 없이 잘 나눠먹었다. 여행에서 은근히 설레는 게 있다면 이런 소소한 간식거리 나눠먹는 즐거움이다.

우연히 만난 아빠와 딸.


하산하는 길이라 그런지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조그마한 손으로 아빠 손을 붙잡아 내려오면서 장난을 친다. 여자아이는 아빠에게 뭐라 뭐라 소리치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아마 비행기를 태워달라는 것처럼 보였다.


아빠와 함께 장난을 치고 싶어 하는 딸과 그런 딸의 부탁을 흔쾌히 귀찮은 표정 하나 없이 웃는 모습으로 받아주는 다정한 아빠의 모습이 정말 너무 보기 좋았다.


이게 벌써 3년 전이다.

참 빠르게 긴 시간이 흘렀다.

이 꼬마숙녀는 얼마나 컸을까?


궁금하다.

본격적으로 칭청산(青城山)에 오를 준비를 했다. 이렇게 돈 내고 등산해보긴 처음이다. 티켓을 사면서 한 가지 에피소드가 생겼는데, '씨에'녀석은 분명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 근데 지폐 숫자가 666번인가, 6666번이라면서 이 지폐는 사용하기 싫다면서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어차피 오늘 하루를 나에게 지불해준 감사한 녀석이라 내가 풀코스로 대접해주려고 했지만, 이 뻔뻔한 모습에 주먹으로 어깨를 한 대 쳤다.


*중국에서 666(六六六)이라는 뜻은 최고라는 의미가 있다.

수많은 인파 속에 한 사람으로서 여행을 통해 내가 바라본 건 현실을 통한 진실뿐.


그리고 남은 건 내 기억과 그 기억을 담은 사진뿐.


이것들이 나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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