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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재 Dec 13. 2020

Ep.6 새하얀 안갯속에서 꽃 핀 우정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중국에서의 생활 16일째 되던 날.


나는 새벽 4시에 눈을 번쩍 떴다. 꼭두새벽부터 내가 눈을 반짝인 이유는 유학생들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기회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말은 이렇게 했으나 사실 거창한  아니다. 청두(成都) 시를 벗어나 외곽지역을 탐방할  있는 기회가 무료로 주어진 것이다. 당시 한국 유학생은  9명이었는데 나를 제외한 나머지 8명의 학생은 모두 여학생이었다. 아무래도 중국에   2 남짓한 시간밖에 흐르지 않은 탓인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 한국인 유학생은  혼자였다.


새벽 04시 30분.


따뜻한 온수로 샤워를 마치고, 후다닥 옷을 입고 기숙사 문을 나섰다.

아차차, 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었다. 조그마한 우산 하나를 집어 들었다. 펄럭이는 우산 펴지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우산 위에 빗방울이 뚝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설레는 마음을 품고 잤던 나이기에 빗줄기가 굵은 날씨는 반갑지 않았다. 천재지변이 아닌 이상 참석한다고 선생님과 약속한 터라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비가 그치길 바라며 학교 정문으로 서둘러 뛰어갔다.

약속 시간까지 20분 정도 남았다. 도착한 사람은 아직 나뿐이었다. 혹시 아무도 나오지 않을까 봐 다른 나라의 유학생 친구들을 맘을 조리며 기다렸다. 10분이 지나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목에 걸린 카메라를 꼭 쥐던 손을 풀어 카메라를 켰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 한 컷을 담았다. 밝은 불빛 아래 보이는 빗방울이 너무 예뻐 보인 탓도 있겠지만, 불안한 내 맘을 숨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시간이 흘르면 흐를수록 빗소리는 더욱 커졌고, 외국인 친구들은 정각에 되어서야 도착했다.


"... 다행이다."

하나  모인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택시를 잡아 지하철 역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이른 아침이라 지하철 역 주변 가게들도 문을 닫은 상태였다.


가게 간판들의 불빛만 덩그러니 비추고 있었다. 아스팔트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빗소리를 가르는    되는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새벽의 매력을 마음껏 느낄  있었던 시간이었다. 모처럼만에 들어보는 새벽 목소리에 취해 친구들과 중국어로 각자 느낀 감정을 공유하며 우리들의 목적지인 티엔푸광장(天府广场) 위치한 '진장 호텔' 향했다.

1시간을 달리고 달려 진장 호텔에 도착.


우리는  6명이었는데 6  중국 현지인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는 친구는 아부(阿布)라는 예멘인 친구   명뿐이었다. '아부'라는 친구는 당시 중국에서 4년째 유학생활을 하고 있던 친구였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의 의사소통은 문제없어 보였다. 우리는 그의 인솔 하에 아주 편하게 프로그램 관계자와 만날  있었고, 아무런 문제 없이 체험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할  있었다.

우리가 떠날 곳은 청두 시와 조금 떨어진 팽주(彭州)라는 지역이었다. 팽주(彭州) 청두 시내에서  2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쓰촨 성에서도 중약(중국 약재)으로 굉장히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날 우리는 중약의 역사나 맛을 알아보러 가는  아니었고, 중국의 () 문화를 즐기러 가는 거라고 했다.

6명 중 남자는 나와 '아부'뿐이라서 우리는 자연스레 버스 옆자리에 앉았다. 이때만 해도 중국어를 몇 마디 내뱉지 못했기 때문에 번역기의 힘을 빌려 그와 소통했다. 그는 작년에도 한국 유학생들을 만나 아직도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한국인에 대한 적대감이나 불편함이 없다며, 나와도 친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나도 '아부'라는 예멘인 친구가 싫지 않았다. 첫 만남이었지만 우린 서로 너무 마음에 들어했다.


팽주로 향하는 버스 안은 비좁았지만, 나의 유학생활의 대장정에 첫 관문은 넓게 열린 듯했다. 나는 점점 중국이라는 나라에 취하고 있었고, 중국이라는 나라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번째로 아부와 나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  곡을 서로에게 소개했다. 나는 아부에게 '광화문에서'라는 슈퍼주니어 규현이 부른 곡을, 아부는 나에게 '조뢰'라는 가수가 부른 '청두(成都)'라는 포크송을 알려주었다.

청두(成都)라는 곡을 무한 반복하여 듣다 보니 어느새 팽주에 도착했다. 팽주에 내리자마자 나를 반겨준 건 백색의 안개였다.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안개임에도 불구하고, 대륙에서의 안개는 왠지 영화에서만 나올법한 안개 같았다. 안개 사이로 신선들이 구름을 타고 왔다 갔다 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팽주 역시 비가 내렸다. 나는  맞는  싫어하지만,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좋아한다. 특히 주말에 난간에 고인 빗물이 바닥에 떨어지며 들리는 소리를 들으면 낮잠 자는 맛은 특히 꿀맛이다.

얘기가 잠시 옆길로 샜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유롭고, 재밌는 나의 중국 경험담. 그 시작은 '외국인 친구들과 사진 남기기'이다. 언제 다시 내가 이런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재밌고 알찼던 하루. 그러면서도 들었던 생각은 '나의 하루는 이렇게 행복한데 한국에 있는 가족들만 두고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될지'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 인생을 살고 싶었다. 지금 내가 내 두 눈으로 담고 있는 걸들을 담고 또 담아도 너무 부족했고, 몸은 힘들어도 기분은 마냥 좋았던 기억도 난다. 글을 쓰는 지금도 이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즐겁다.

나는 너무 행복하다.

사진으로나마 행복해하는  모습을 찾아볼  있어 너무 좋다.

역시  어른들의 말은 하나도 틀린  없다.

"남는  사진뿐이다."

한참을 걸어 날아온 곳은 어느  찻집. 맑은 선율이 들렸다.  안에서는  생머리의 여성이 비파(琵琶) 연주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적이 없던 터라  생소했다. 고급 찻집에  듯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재벌들이   잔을 마시며  향수를 떠올릴  있는 이런 현악기 연주를 듣고 하는데 아주 아주 잠시나마 돈이 아주아주 많은 부호가  듯했지만, 바로 현실로 돌아와 체험학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중국을 대표하는 () 문화.

인원이 워낙 많아 차를 직접 우려 보진 못했지만, '()리스타' 내려준 담백한  맛은   있었다. 차를 많이 마셔보지 못한 탓도 있지만, 차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맛이 굉장히 떫었던 기억밖에 없다. 그래도 몸을 따뜻하게  주고, 혈액순환에 좋다고 하니  잔이고,  잔이고 마셨다. 몸에 좋은 것도 과하면  된다지만, 이날은 비도 많이 오고, 날도 춥고 하니 이날만큼은 예외다. 하하.


*차(茶)리스타 : 차(茶)를 내려주는 사람, 그냥 내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른 것이다.

비록 비가 보슬보슬 하루 종일 내렸지만, 오히려 내 마음을 촉촉이 적셔줬던 하루.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청두라는 도시에서 만나 각자 다른 국적을 가지고 중국어를 통해 의사소통하고, 우정을 돈독히 다졌던 하루.

험한 세상을 홀로 헤쳐나가야 한다지만,  험한 세상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분명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깨닫게  주었던 하루.

모든  완벽했던 하루.

  이야기는 다음 에피소드에서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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