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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재 Dec 07. 2020

Ep.5 한국에 명동이 있다면, 중국엔 춘시루가 있다.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청두(成都)에 온 지 6일째 되던 날.


나는 드디어 휴대폰 유심(USIM)을 갈아 끼었다. 이때까지 나는 부모님께 생존신고를 하지 못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장기간 지내려면 반드시 깔고 가야 하는 애플리케이션 중 하나인 위챗(微信)을 한국에서 깔고 가지 않은 탓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까스로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을 찾아 그나마 연락이 되는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내 부모님 연락처를 알려주고, 대신 나의 생사를 보고해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이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친구에게 너무 고맙다.


친구야 고마워.


아무튼, 중국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이것저것 반드시 필요한 몇 개 아이템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카드다. 

어쨌든 좋든 싫든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4개월간 살기로 결심했으니 중국 버전으로 나 스스로를 패치해야 했다. 그러나 중국에 최대한 적응하고자 하는 마음가짐까진 좋았으나 언어가 가장 큰 문제였다. 학교에서는 나를 케어해주는 담당 선생님이 영어를 잘하셨기에 그나마 알아들을 수라도 있었던 반면, 교외에서는 온통 중국어 투성이었기에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있는, 한국인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중국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함께 은행에 들려 계좌를 만들고, 카드를 발급받기로 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 내엔 은행이 있어서 어려움 없이 계좌를 개설해 체크카드까지 발급받을 수 있었는데, 중국 내 모든 학교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머물고 있었던 학교에는 은행까진 없었다. ATM기 밖에 없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 근처에 위치한 은행까지 나왔어야만 했다.


그래도 나름 첫 홀로 떠난 외출이었기에 모든 게 신선했던 게 귀찮음을 이겨낸 동력이었달까?

중국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은행까지 도착. 근처에 건설은행(建设银行)이 보였다. 건설은행은 중국을 대표하는 은행 중 하나로 제법 큰 규모의 은행이다. 대표하는 색깔이 파란색일걸 보니 우리나라 신한은행과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은행에 들어간 뒤였다.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은행 창구는 고작 3개인데 사람은 100명쯤 있었다. 사진 속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내 대기번호는 80번. 내 앞에만 34명이 있었다. 한국도 종종 이런 경우가 많지만, 중국에서는 왠지 인구가 많기 때문에 매일 이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도 색안경일까?


시간이 흘러 드디어 내 차례. 분명 중국인 친구와 함께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슨 자신감인지 스스로 계좌를 만들어 보겠다고 되지도 않는 영어를 쓰며, 번역기를 돌려가며 우여곡절 끝에 카드까지 발급받았다. 지금까지 내 지갑에 추억과 함께 고이 모셔져 있는 이 건설은행 카드가 내가 중국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이룬 가장 뜻깊은 결과물이다.

카드를 발급받은 나는 입 밖으로 띠 티에(地铁:지하철)를 외치며 걸었다.


"띠 티에, 띠 티에."


나는 지하철까지 반드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지하철 앞에서 함께 교환학생을 온 동생들과 처음으로 같이 서울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춘시루(春熙路)에 놀러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지하철을 타본 경험이 모두 없었기에 하염없이 어리둥절하며 띠 티에만 외쳐댔다.


"띠 티에, 띠 티에."


구글맵을 켜고 지하철이라고 쓰여있는 곳을 향해 계속 걸었다. 어떻게든 역까지만 가면 되리라. 도착하면 하면 영어든 중국어든 춘시루, 춘시루를 외치면 되니까.


그래도 다행히 10분 만에 롱 취엔이(龙泉驿) 역에 잘 도착했다. 그리고 짐 검사를 빠르게 마치고 띠딕. 방금 만든 따끈따끈한 카드를 찍고, 지하철에 탑승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지내고 있는 동네가 롱 취엔이(龙泉驿)라는 것을. 그리고 이곳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종점이라는 것도. 그래서 시 중심으로 나들이를 떠날 땐 항상 좌석이 텅텅 비어있어 앉아서 갈 수 있었다. 되돌아올 때도 종점을 향해 가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면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하니 아직도 설렌다. 앉아있다가도 서 계신 어르신들을 보면 칭 쭈오(请坐 : 여기 앉으세요.)하며 공경했던 예의 바른 나의 모습까지도. 하하.

45분을 달려 춘시루(春熙路) 역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B출구로 나오면 IFS백화점으로 연결된 통로가 있는데 명품으로 도배된 곳이다. 백화점이 본래 값 비싼 것들을 다룬다고 하지만, 이곳은 클래스가 달랐다. 명품 중에도 명품만을 품고 있다. 내리자마자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곳이면 말 다한 것 아닌가?


청두에 있는 동안에 IFS 백화점에 있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은 결국 입도 먹어보지 못하고 귀국했지만.


그 외에도 IFS 백화점에는 먹거리가 많다. 그러나 한국인 입맛에 맞을지는 미지수. 지하에 위치한 돈가스 가게에서 꽤 먹음직스러운 돈가스를 주문해서 먹었는데 어찌나 맛이 없던지. 그 돈가스를 먹고 그날 바로 물갈이를 시작했다. 장염과 급체로 인해 이틀간 고생한 기억이 난다. (어딜 가나 먹는 걸 조심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틀린 게 하나도 없다.)


IFS 백화점 지하에 있는 모든 식당은 그 식당이 위치한 층에서만 이용 가능한 카드가 있다. 그 카드는 카운터에서 현금으로 충전을 한 뒤 받고, 바로 사용할 수 있다. 사용하고 남은 금액은 다시 카운터에서 환불받을 수 있으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첫 외출이 신난 우리 꼬맹이들.


4년 동안 내 옆에서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었던 동생들이다.

청두(成都)에서 너무 개인적인 시간과 경험만 하느냐고 동생들을 챙겨주지 못한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 같이 데리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경험도 시켜주고, 함께 여행도 다니고 했어야 했는데. 그래도 어느 때보다 친했던 우리들이었기에 함께 타국에서 각자의 새로운 모습도 볼 수 있었던 기회였기에 우리에겐 너무 소중한 기회였고,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처럼 매일 볼 순 없지만, 우리 사이는 아직도 예전만큼 돈독하다.

강호동 백정은 IFS 백화점 6층에 있다.

볼거리가 너무 많아 집중하지 않으면 놓칠 뻔했던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도 만나볼 수 있다. 김 씨 어머니가 파시는 김밥과 떡볶이부터 강호동 아저씨가 구워주는 눈꽃등심까지. 이 역시 청두에 머무는 내내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중국사람들에겐 꽤 인기가 있었고, 그래도 아직까진 '한국문화가 사랑받는구나'라고 내심 자랑스러웠던 기억도 난다.

백화점 7층에 올라가면 춘시루의 랜드마크, IFS 백화점의 랜드마크인 건물에 매달린 판다를 만날 수 있다.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크기가 엄청 크다. 외부에서 보면 귀엽게 엉덩이만 보인다. IFS 백화점 맞은편에 맥도널드가 있는데 창가 쪽에 앉아 빅맥을 뜯으며 이 판다 엉덩이를 보면서 먹는 맛도 꽤 쏠쏠하다. 춘시루에 갈 때면 나는 어김없이 그 짓(?)을 했다. 2020년인 지금도 춘시루의 모습은 변한 게 하나도 없을 텐데 코로나 때문에 가보지 못한 게 너무 한이다. 여자 친구가 생긴다면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됐으면 좋겠다.

해가 지니 젊은 이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광장에 각자 개성을 '뿜뿜'하는 젊은이들이 인라인 스케이트와 보드를 들고 나와 음악에 맞춰 자유분방하게 뛰놀고 있었다. 행위 예술일까? 예술에 무지한 나라서 이것이 힙합인지 아니면 이것이 중국 소년문화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 입가에 머금은 미소는 분명 행복이었다.

청두에서 찍은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

해가 저물고 건물 외벽 네온사인은 반짝반짝.


사람들은 바글바글.


이 사진은 내가 청두에서 지내면서 5,000장 가까이 찍은 사진 중 마음에 드는 몇 컷 안 되는 것 중 하나이다. 사진에 대한 지식이 아무것도 없는 나지만, 애플의 광고는 세계 최고라는 것 정돈 안다. 아무런 감정 없이 찍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땐 언제나 내가 가장 행복할 때, 그리고 그 순간을 담고 싶을 때만 검지로 검은색 버튼을 꾹 누른다. 고로 내 사진은 언제나 감정을 표현하진 않았지만, 언제나 행복만을 담는다.


결론은 '춘시루는 참 예쁘다.'이다.

일시 : 2018年 03月 27日.

날씨 : 포근하면서도 쌀쌀했다.

장소 : 춘시루春熙路 B출구 광장.


내용 :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평범한 삶을 살 뿐이었고, 모든 사람을 제외한 나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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