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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재 Dec 05. 2020

Ep.4 촉나라의 거리를 고스란히, 锦里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중국의 영물이라고 일컬어지는 판다는 사실 쓰촨성 청두(成都)를 대표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청두에는 '판다사육기지'가 있을 만큼 판다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 그래서 청두 내 관광지 어디를 가던지 이렇게 귀여운 판다 형상을 한 인형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내가 청두(成都)에서 하루하루 머물렀을 당시가 2018년이었는데, 당시엔 여자 친구가 없어서 이 판다 인형을 기념품으로 사가도 딱히 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하나 사서 방구석 한편에 놓아둘 걸 하는 아쉬움은 있다.


아무튼, 나는 아쉬움 발걸음의 콴쟈이샹즈(宽窄巷子)를 뒤로하고, 콴쟈이샹즈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진리(锦里) 거리에 가보기 위해 다시 아무 자전거를 집어 격하게 앉아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진리(锦里) 거리를 가는 길은 이랬다. 춘시루(春熙路) 실버 빌딩 맞은편에서 버스를 타고 진리 거리까지도 올 수 있지만, 버스도 타보고, 자전거를 타고 이곳을 와본 나는 개인적으로 그리 먼 거리가 아니기에 자전거를 타고 진리로 향하는 거리의 냄새를 맡아보길 권한다. 흔한 관광지의 풍경도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국 전통 향신료 향과 마라(麻辣)의 고추기름 냄새 등과 같이 코끝을 찡하게 하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중국 특유의 향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 흔적을 남겼을 때 당시는 3월, 봄이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1년 뒤에 다시 다녀갔을 때도 3월 말이었다. 그래서 나에겐 3월 봄의 진리(锦里)의 모습만 기억이 난다. 아니 기억을 하고 있다.


사진 속에서도 얼핏 보이지만, 중국에도 벚꽃이 핀다. 정확히 벚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핑크빛으로 물든 꽃이 활짝 핀다. 이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이듯 봄은 만물의 생동감을 품은 계절이기에 봄에 진리 거리에 가본다면, 화사한 꽃들이 당신을 반겨줄 것이다. 마치 나를 반겨주었던 것처럼.

진리(锦里), 한자 그대로 읽어보면 '금리'라고 읽는다. 금리 거리 혹은 진리 거리. 둘 다 맞다. 나는 진리라는 말이 더 입에 감겨서 진리라고 부른다.


진리(锦里)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삼국지의 촉나라 저잣거리를 재현한 곳이다. 그리고 비단이 유명하여 '진리'라고도 불린다. 가는 길에 시끌시끌했던 게 다 이유가 있었다. 입구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정말 어마 무시하게 많았다. 내가 평일에 갔는 데도 이 정도였는데 주말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정말 2,000년 전에 있던 곳이었을까?'라는 의심이 들었지만, 입구 위를 보니 낡은 기와가 세월의 흔적을 증명하는 듯했다. 나는 낡은 기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웅장해졌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 위챗(微信) 영상통화 버튼을 꾸욱 눌렀다. 엄마에게 다급하게 통화를 걸었다. 아마 나는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유비, 제갈공명 보러 왔다고.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 중국에 와 유심카드가 없어 도통 부모님께 생존신고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틈틈이 생존신고를 해야 했고, 무엇보다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어 그런지 물갈이를 했다. 그래서 건강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던 시기라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연락을 자주 하려고 했는데, 이때는 확실히 부모님께 자랑하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진리(锦里)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눈에 뜨였던 건 바로 스타벅스의 초록색 간판이었다. 콴쟈이샹즈도 그랬지만, 진리에도 중국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옛 건축물에 스타벅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가격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확실 달랐다. 메뉴도 달랐고, 그중에서도 지역 특색을 담은 스타벅스 텀블러가 가장 눈에 띄었다. 카페 앞에서 신메뉴 출시 중이라며 신메뉴를 시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시음만 하고 사 먹지는 않았다. 밀크티 같은 맛이 나서 목마른 나에겐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 메리트가 없었달까?

한 걸음 한 걸음 거닐 때마다 카메라 셔터 버튼을 누르게 하는 곳이었다. 워낙 오래된 곳이라 군데군데 보수의 흔적이 보였지만, 그래도 2,000년의 세월을 버틴 게 대단하다 싶었다. 배경은 경공을 하며 하늘을 가르고, 장풍을 쏘며 주먹다짐을 할 것 같은 곳이었지만, 너무 잔잔한 분위기여서 놀라움도 조금 있었다.


커피보단 차(茶)가 어울리는 이곳.

양복보단 한푸(汉服)가 어울리는 이곳, 진리(锦里)


*한푸(汉服) : 중국 한나라 때 입던 의복.

한국은 곡선의 미가 있다면, 중국은 날카로움의 미가 있다고 해야 할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처마 끝이 굉장히 날카로운 모습이 어쩌면 긴 세월을 격하게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마 끝에 달려있는 홍등(红灯)은 깜깜한 야밤을 은은하게 비춰주고, 흐르는 강물 소리는 선비들의 읊조리는 시에 영감을 불어넣어 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감성을 느끼는 도중 눈 앞에 보인 CCTV는 나에게 '네가 있는 곳은 21세기 이니라.'라고 훈계하는 듯했다.

진리(锦里)를 한 바퀴 돌고 나가려는 데 만난 건장한 청년 둘. 기념사진 몇 장을 같이 찍어주고 10元 그러니까 한국 돈으로 1,700원을 받는다. 나도 기념으로 한 장 남길까 하다가 나를 찍어주는 사람도 없었을뿐더러 그 당시에는 10元조차 뭘 그리 아까웠는지 나는 결국 기념사진을을 남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많이 아쉽다. 한 장이라도 남겼으면 좋았을 텐데.


청두 중심지인 춘시루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곳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볼거리가 많았다.

벌써 2년도 더 된 사진이지만, 이분들은 지금쯤 뭐하고 지낼까? 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아직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다시 글로 만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코로나로 인해 당분간은 갈 수 없는 아쉬움은 어떻게 숨길 수 없을 것 같다. 나의 가장 행복한 시절을 품고 있는 청두(成都)이기에.


기회가 된다면 그땐 사랑하는 사람과 꼭 함께 다시 가고 싶다.

이곳엔 맛있는 길거리 음식도 많으니까.

이곳엔 재밌는 볼거리도 많으니까.


이곳은 내가 당신에게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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