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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재 Nov 04. 2020

Ep.2 홀로서기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청두(成都)에 온 지 이틀 째 되던 날, 나는 내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


과연 나는 '청두(成都)' 어디쯤 있을까?


가장 먼저 내가 한 일은 내가 머무는 학교의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어를 할 줄 몰랐다. 험한 세상에 한 걸음 내딛고자 결심한 지 몇 초만에 난관이 부딪혔다. 일단 휴대폰을 켰다. 그리고 위챗을 눌렀다. 위챗의 유일한 친구였던 한국 유학생 담당자 씨에 라오싀(老师). 그리고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중국어 니하오(你好). 일단 무작정 선생님께 연락을 취했다.


“老师,你好!”


선생님께 연락을 취한 나는 바로 네이버 파파고 번역기를 켰다. 선생님의 답장을 알아볼 수가 없으니 그대로 복사 붙여 넣기를 해서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城材,你好! “

“什么事? “


대망의 중국 생활 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번역기를 활용하며, 복사 붙여 넣기를 반복하며 대화를 이어간 끝에 나는 '청두 항공 직업기술학원(成都航空职业技术学院)'이라는 전문대학에 머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현재 있는 곳을 알아내는 데에만 30분 이상이 걸렸다. 별 것 아닌 듯 보이지만, 나에겐 엄청난 성취감을 주었고, 기세를 몰아 교내를 한 번 돌아보기로 하였다.


라오싀(老师)는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중국에 처음 딱 발을 내디뎠을 때 눈에 가장 뜨였던 건 바로 자전거였다. 어찌나 자전거가 많던 지 사람보다 많이 보였던 게 자전거였던 것 같다. 교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사용하고 아무 데나 바쳐놓은 자전거가 보였다. 아마도 중국인은 평소 자전거를 애용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 습관화된 부분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전거 공유 시스템(Bike-sharing)이 너무나도 잘 갖춰져 있고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던 것이 가장 큰 역할은 한 듯 보였다. 학교가 워낙 넓어서 나도 한 번 이용해볼까 했는데 돈을 지불하기 위한 수단도 없었을뿐더러 그 돈을 지불하기 위한 과정을 해석할 수 없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길 한복판의 자전거와는 이별을 하고 생활광장(生活广场)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생활광장(生活广场)에 들어오니 많은 학생들이 그들의 하루를 만끽하고 있었다. 식당에서 친구들과 웃음꽃을 피우며 밥을 먹는 학생부터 동아리원을 모집하는 학생까지 모두 자신의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난 건데 나도 모든 게 신기해 DSLR을 목에 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곤 했다. 그들 눈에는 누가 봐도 한국인이었지 궁금증을 품고 이것저것 사진을 찍어내던 나에게 다가와 같이 사진을 찍자고 말했던 식당 종업원이 떠오른다. 당연히 그들이 뭐라고 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한국말로 '저 한국인이에요, 한국인이에요!'라고 했던 건 기억이 난다. 한국이라는 단어의 한국어 발음과 중국어 발음이 비슷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숨에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고 그때 위챗이라는 중국판 카카오톡에 친구를 많이 추가했던 것 같다.


사진을 왕창 찍어주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배에서 밥 달라고 난리를 쳤다. 그리고 어디선가 지글지글 삼겹살 굽는 소리가 뇌리에 꽂혔다. 본능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고개를 좌우로 한 번씩. 그리고 귀를 쫑긋. 지글지글 기름 섞인 끈적한 소리의 주인공은 소시지였다. 평소 소시지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한국에서는 많이 먹어보지 못했다. 이날도 소시지를 먹어보진 않았다. 사진으로만 남겼을 뿐. 색깔이 영롱하여 도전해보고자 했으나 소시지 냄새가 흔히 내가 알던 냄새가 아니었다.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난생처음 맡아보는 냄새였다. 소시지를 직접 빗는 사장님 모습을 보니 중국산 향신료를 고기 안에 넣어 빗는 듯했다. 지금이야 중국음식을 즐겨 먹기도 하고, 찾아가서 먹기도 하지만 처음 중국 음식을 먹었을 땐 너무 어려웠다. 흔히 말하는 물갈이를 1주일 동안이나 했다. 그러고 나서 적응했다.


이밖에도 생활광장(生活广场)에는 많은 음식들이 있었다. 중국을 대표하는 샤오롱바오(小笼包)와 양꼬치(羊肉串) 그리고 사진에 담진 못했지만 우육면(牛肉面)도 보였다. 이 밖에도 많은 음식들이 있었지만, 이날은 양꼬치만 먹어보기로 했다. DSLR을 목에 매고 영화 쿵후 허슬에 나오는 무림고수 아주머니처럼 생기신 주인장 앞에 섰다. 머리에 파마용 롤을 꽂고 계신 게 꽤나 인상 깊었다. 그래도 담배는 태우시지 않았다. 번역기를 켜고 딱 3개만 달라고 했다.


“三个!三个!”


'싼 거! 싼 거!'를 외쳤다. 발음이 이상했던 걸까?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우뚱하시면서 '이콰이(一块)'라고 말씀하셨다. 현금을 아주 조금 가지고 있던 나는 외국에서 절대 밑 보여서는 안 된다는 엄마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당당하게 지불했다. 아주머니가 손수 하나하나 맛있게 구워주신 덕인지 양꼬치 맛은 꽤 괜찮았다.


우여곡절 끝에 양꼬치 3개로 생활광장(生活广场) 투어는 끝이 났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정신없이 흘러갔다. 긴장을 많이 한 탓인지 휴대폰 배터리도 바닥을 드러냈고, 등에도 땀이 흥건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기숙사로 돌아갔다. 어차피 교내이긴 했지만, 휴대폰 배터리도 없었던 터라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대처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홀로 살아남기란 유학생활이 처음인 나에겐 너무나 고된 일이었다.


이제 고작 이틀이 흘렀다. 정말 고작 이틀이 흘렀는데 욕심이 너무 났다. 철창 너머로 보이는 학생들은 너무나 자유로워 보였다. 언제쯤 나도 이곳에서 이들처럼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을까?


나는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홀로서기를 배우는 중이었다. 그리고 다시 빠른 걸음으로 기숙사를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또 말했다.


'니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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